<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은 ‘하늘도 편하고 땅도 편하고 사람도 더불어 편한 곳’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식자(識者)들은 천안을 하늘 아래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말한다.
정말 ‘천안’이라는 말이 ‘하늘천’에 ‘편안할안’자처럼 그 뜻이 그대로 담겨있을까. 보통 어떤 장소가 좋은가 또는 나쁜가를 말할땐 ‘풍수지리’로 푼다.
그런데 천안이 풍수지리학상 좋은 형국이라는 말을 듣는가. 우리가 자주 듣는 ‘오룡쟁주’ 지세는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형국이다. 편안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천안이란 지명은 언제 어떤 이유로 붙여졌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민병달 전 천안문화원장이 2003년 발간한 ‘고려태조의 천안도독부 건치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천안’이란 지명을 흥미롭게 풀어내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태조때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태조 왕건은 삼국통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백제가 천안과 경계한 웅주(지금의 공주)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고려태조 13년 술사 예방이 태조에게 “도솔로 불리우는 곳이 삼국의 중심이며 오룡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입니다. 그곳에 성루를 쌓고 군사를 기르면 삼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에 따라 태조는 도솔이라 불리는 땅에 ‘천안도독부’를 설치한다. 천안도독부의 지경은 구 천안시와 풍세·광덕에 해당한다. 도독부는 전례에 없는 명칭이다. 도독은 군지휘관인 무장을 두고 지방사법 및 행정을 관장하는 총독 소임을 수행하는 자리다.
중국에서 정복지나 변방에 도독부를 두었던 제도를 태조가 천안에 둔 것은 후삼국통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나라의 경우 사방에 ‘편안할 안(安)자’를 넣어 도호부를 세웠다. 변방을 굳게 지켜 국태민안을 이루자는 염원을 담은 명칭들이다.
여기서 민병달 전 문화원장은 “고려 태조는 후삼국 통일을 이룩해 ‘천하대안(天下大安)’을 이루자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천안도독부라 한 것”이라고 풀었다. 천하의 통일을 약속한 땅에 ‘천안(天安)’이란 명칭을 붙여 지덕을 세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란다.
천안부의 창건 이래 최다의 군사들이 집결한 태조 19년 9월, 선봉 일만을 비롯해 삼군을 거느린 고려 태조는 일선군에서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싸웠고, 일패도지한 신검군은 황산현 탄령을 넘어 달아나다 결국 항복함으로써 고려는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삼국통일이 완성된 이후 천안은 지방의 고을이름으로 과하다는 논의에 밀려 여러번 개칭하는 역사를 남긴다.
고려6대 성종때에 환주로 개칭했다 8대 현종에 천안부롸 환원하고 26대 충선왕때 다시 영주로 했다 공민왕때 환원했다. 조선3대 태종13년에도 영산군으로 개칭했다 16년 다시 천안군으로 환원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로 살펴볼때 ‘천안’은 하늘아래 편안한 곳이라기 보다는 그런 곳을 만들겠다는 의지적 명칭이라 볼 수 있다. 즉 현 시점이 아닌 미래적 시점에 ‘천안’이 있는 것이다. 물론 천안이란 명칭 이전에 ‘도솔’로 불렸다는 것은 이미 살기좋은 곳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해 천안역사문화연구실의 김성열 연구실장은 “명칭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어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며 향후 고증해나갈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