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흔히 낙관 없는 그림이라 한다. 제작연대도, 작가도 모르는 그림들이다. 한 때 ‘잡화’라고 불리며 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화만큼 민중과 함께 한 것도 없다. 민화는 한 시대의 사회상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고 있다.
민화는 화훼도, 화조도, 어해도 등 17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호랑이와 관련해선 ‘축수도’에 담겨있다. 축수도(畜獸圖)는 동물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많은 문헌상에서 사납고 무섭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보은의 동물로도 자주 등장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우리나라는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닭, 개, 호랑이를 그려 부엌문, 중문, 곳간문,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있다. 불을 막아낸다는 전설적인 동물 해태는 부엌에서, 어둠을 밝히고 잡귀를 쫓아버린다는 닭은 중문에서, 도적을 지키는 개는 곳간에서, 그리고 집안에 잡귀가 침범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호랑이는 대문에서 각기 집안식구들을 지켜주는 영물이었다.
서민들은 누군가 자기를 지켜주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물에는 용왕을, 산에는 호랑이를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 ‘좌청룡 우백호’도 그런 이유다.
우리에게 있어 호랑이는 인간적이며 해학적인 성품을 가진 동물이었다. 칼이나 창을 쥐고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중국의 호랑이와는 대조된다. 위엄이 있으면서도 무섭지 않다.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해서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고 병난, 질병, 기근의 세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다. 벽사의 뜻으로 그려지는 호랑이는 대나무와 함께 악귀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해 물리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내년은 특히 60년만에 한번 찾아온다는 ‘백호랑이띠’ 해다. 사신도에서 백호는 서쪽을 수호하는 상상의 동물로 나온다. 용, 봉황, 기린, 해태, 천록, 삼두독수리 등 영수들은 모두 여러 동물들의 신체 일부분을 합성시켜 만든 상상의 동물이지만, 호랑이만은 실제의 동물인 점도 특이하다.
천안 성불사 산신각의 호랑이(새해를 앞두고 산신각을 찾는 불교신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산신각의 호랑이
조선 후기 산신신앙 형태는 무속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때는 아직 신앙의 상징물이 그림으로 형상화된 산신도는 없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산신각 또는 산신의 성격을 띤 신앙이 전국의 명산이나 사찰, 마을단위나 가가호호까지 모셔지면서 확고한 민족의 종교와 같은 성격으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산신각은 밖에서 초와 향을 사르며, 전각 앞에서 제를 올리거나 합장하는 용도로 이용되었다. 산신기도는 정갈하고 부정하지 않아야 효험이 있다고 믿어 단독 기도터가 마련된 것이 산신각이다.
산신각 좌우 벽에는 백호와 청룡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랑이는 민화속에 등장하는 까치호랑이가 많다. 하지만 산신도의 형상이 어디에서 어떤 연유로 신선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적어도 초기 산신도(19세기 초)로 보이는 그림의 특징은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1830년대의 선암사 기호산신도는 호랑이에 기대앉아 있는 조선 후기 전형적인 산신도 형태를 보여준다.
호랑이는 일찍부터 산령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산신령의 사자나 또는 산신과 동격의 의미를 부여해 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