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화의 물결에 밀려 설화문화의 중심인 사랑방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랑방에서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던 설화가 차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천안시 향토문화자료중엔 ‘천안의 민담과 설화’라는 책이 있다. 민병달·이원표씨가 1998년 관내 민담과 설화를 수집·정리해 엮은 것이다. 이들은 민담·설화가 점차 사라져가는 것에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천안의 민담과 설화’에는 모두 57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 내년 경인년 호랑이띠해를 맞아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민담은 4건이 수록돼 있다. 1922년 이후 한국호랑이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천안에서는 과거와 현재도 있고, 또한 미래에도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 ‘호랑이 이야기’다.
효자 유언겸을 지켜준 호랑이
모친이 작고하자 유언겸은 삼년시묘를 살았다. 한번도 여막을 떠난 적이 없으며, 우물이 멀어 생활이 무척 불편했다. 어느날 호랑이 한 쌍이 여막 앞을 지켰다. 한번은 도둑이 들었는데 호랑이의 포효에 놀라 도망갔다. 염병에 걸린 중도 여막에 오다 호랑이에게 쫓겨갔다. 전염병이 돌자 동네사람들은 ‘역귀가 기름내를 따라온다’는 속설로 일체 제사음식을 차리지 않았다. 유언겸은 효성으로, 제수를 차려 동네사람들이 항의소동을 벌였지만, 호랑이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같은 효성을 알게 된 조정은 동리앞에 효자정문을 세워 포양했다. 유언겸 일가 정문이 풍세면 남관리 공수골 마을앞에 건립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선조임금이 출천지대효자라고 항상 칭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실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치마바위
삼족이 멸해지는 가운데 아낙네 하나가 도망쳐 나왔다. 포졸들을 피해 산 속으로 숨었다. 호랑이가 어둠 속에서 먹을 것을 건네 주었다. 한참 잠들었다 깨니 옷보따리를 내밀었다. 치마를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자 호랑이는 아낙네를 등에 태우고 산과 들을 지나 남쪽으로 달렸다.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릴때 어느 초가집에 내려졌다. 거기서 아들을 낳고 여생을 잘 지냈다. 그녀가 도망친 산이 목천읍에 있는 취암산이어서 ‘치마바위’ 또는 ‘며느리바위’라 했는데, 한(恨) 많은 바위로 통한다.
효부이야기
옛날에 한 효부가 살고 있었다. 친정이 진천인 이 효부는 병천으로 출가해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남편이 병으로 죽자, 시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며느리가 재가하기를 원했다. 갖은 핑계를 대며 친정으로 보냈으나, 그때마다 완강히 뿌리치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친정으로부터 부고장이 날아와 부랴부랴 달려갔다 아닌 것을 알고 잠자리를 마련해달라 했으나, 밤이 으슥할 때 홀로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뒤도 안 돌아보고 백여리나 되는 험한 산길을 향해 떠났다. 가는 도중 호랑이를 만나 혼비백산했지만 담대히 자신의 처지를 밝혔다. 호랑이도 감동했는지 그녀를 태우고 쏜살같이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과부는 먹다남은 팥죽을 주었다. 며칠 후 웅덩이에 빠진 호랑이를 마을사람들이 잡았다. 과부가 보니 자기를 살려준 호랑이었다. 과부는 사람들에게 호랑이 입 언저리에 팥죽이 묻어있을 거라며 자신의 호랑이임을 밝히며 사람들로부터 구해주었다. 소문이 퍼져 군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과부는 효부상을 받게 되었다.
범이 된 효자
병든 아버지를 모신 어느 효자가 토끼의 간 100개를 들게 하면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날 토끼를 쫓다가 산속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 ‘머리맡에 있는 책을 외우면 범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깼는데 정말 꿈속의 책이 있었다. 그로부터 효자는 범이 되어 하루에도 많은 수의 토끼를 잡게 되었다. 마지막 100개째 토끼를 잡고, 이제 사람으로 변신하려는데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내가 책을 태워버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마지막 토끼의 간을 먹고 병석에서 일어났으나 효자는 범이 된 채 산천으로 돌아다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