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후보자 등록일이 내년 3월21일부터다. 민선4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천안시장에게는 새로운 사업보다 추진해왔던 사업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성무용 시장이 내건 약속사업은 모두 99건이다. 이를 완료하는데 드는 비용은 7조3167억원에 이른다. 실로 천문학적인 돈이다. 지난 8월 말 천안시는 ‘민선4기 약속사업은 67건(68%)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히며, 나머지 32건은 ‘임기 후 지속사업’으로 남겼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 탈 없이 보인다. 하지만 속을 가만 보면 텁텁한 뒷맛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 대해 시가 명징(明徵)하게 해명할 수 있는 지 지켜볼 일이다.
첫째, 처음부터 약속사업을 불명확하게 잡았다는 것. 둘째, 약속사업의 완료적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 셋째, 약속사업의 노른자인 민자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 것.
넷째, 임기 후로 떠넘겨버린 32건에 대해 차후 지켜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하는 것 등이다.
첫째, 처음부터 불명확했다?
성 시장이 내건 99개의 약속사업은 저마다 중요한 사업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하늘에서 감이 뚝 떨어지듯’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하나의 약속사업은 자체로 머리가 있고 몸통이 있고 꼬리가 있다. 시장이 순간적인 착상(着想)으로 꺼내놓을 수도 있지만, 시행정이 오랫동안 전략적으로 구상하고 계획한 사업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만큼 ‘약속사업’이라면 적어도 개개의 사업들이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시장의 의무이기도 하다.
최근 행정에서도 ‘공무원실명제’를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곳에 교각을 세우면 어느 공무원이 담당했는지 기록해 책임성을 부여했다. 예술가들은 벌써부터 자기작품임을 알 수 있도록 작품 한 켠에 사인을 해왔다. 요즘은 한 작품도 여럿이 지적재산권을 주장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장이 공약을 내건 것은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성을 띤다. 막대한 예산과 지적능력을 필요로 하는 행정일은 사안에 따라 역사의 기록물로 남겨진다.
성 시장이 내건 약속사업이 처음부터 누구의 머리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됐는지를 생략한 채 ‘시장 이름으로’ 치장하는 것은 현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다. 적어도 전 시장이나 전전 시장에서 구상되거나 출발한 사업이 있다면 현 시장이 ‘어디서부터’ 맡은 것인지가 생략됐다. 또한 임기 내에 ‘어디까지’ 할 것인지의 목표도 부재하다. 이렇게 불완전한 사업이 ‘완료여부’만으로 평가돼선 안된다. 언제까지 ‘잘되면 내탓, 잘못되면 남탓’, ‘엿장수 맘대로’ 등의 경구(警句)가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56만에 이른 천안시 인구, 시세가 커지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바람 잘 날 없다.
둘째, 모호한 완료적 개념
성무용 시장은 임기내 약속사업이 68%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에는 성 시장처럼 자신의 공약사항에 대해 세심히 살피고 분석해 시민들에게 알린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과 비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성 시장의 ‘열심’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완료’라는 개념에서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시는 지난 8월31일 약속사업토론회에서 ‘이미 37건을 완료했고 30건은 임기 내 완료할 수 있다’며 자신했다. 완료된 사업은 ▷NGO공동협력센터 운영 ▷외국어교육원 설립 ▷일봉산워터파크 조성 ▷평생학습도시 조성 ▷WHO 공인안전도시 인증 ▷불당대로 개설 ▷복지할인카드제 운영 등이다. 2009천안웰빙식품엑스포 개최를 비롯해 남부대로-신방통정지구 연결도로 개설, 대중교통 운수종사자쉼터 확대, 봉서산 자연생태학습장 조성, 농산물 산지종합유통센터 건립 등 30건은 임기 내 완료가 가능할 것으로 분류했다.
시는 어떤 의미에서 ‘완료’로 서둘러 단정지을까.
약속사업이 ‘완료’에서 종결됐다고 보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상품가치가 있음을 평가받는 것이 상품을 만든 자에게 종결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어느 요리사가 있어 김치찌개를 만들었다고 할 때에는 적어도 그 음식물의 맛까지 평가되는 것이 맞다.
천안시가 완료했다는 약속사업을 보면 ‘시청 실업축구단 창단’이라든가 ‘NGO 공동협력센터 운영’, ‘일봉산 워터파크 조성’, ‘상설 취업뱅크 운영’, ‘복지할인카드제 운영’, ‘평생학습도시 조성(선포)’, ‘광역도시행정체계 구축’, ‘고객중심 혁신시스템 구축’ 등이 있다.
예로 천안시는 실업축구단을 창단했지만, 여러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 돼버렸다. 일부 시의원들은 지난 행감에서 최고의 시설과 운영진을 보유하면서도 하위권에 있는 실업축구단의 문제점을 짚었다. 장기수 의원은 “차후 개선된 운영안과 성과를 내보여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NGO 공동협력센터도 마찬가지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실제 1명의 직원이 일을 보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치며 애초 공동협력센터가 지향한 방향이 무언지조차 헷갈린다는 질타를 받았다. 인력이나 사업비를 대폭 지원하든가, 문을 닫든가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개별적으로 완료된 약속사업의 경우 한번쯤은 당초 어떤 목적으로 추진했고, 그것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나 여건변화는 없었는지, 그리고 추진 후 기대성과나 추진평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 1억짜리 사업이 100억 사업이 됐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가 병행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편 임기 내 완료가능하다고 내건 사업들에 진정성은 얼마나 될까.
‘천안시립극단 창단’은 내부검토에서도 밝히듯이 시기상조 또는 부정하는 경향이 높다. 차라리 천안연극풍토 활성화를 위해 지원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천안 정체성 찾기’ 또한 그동안 어디에서도 체계적으로 추진해온 바가 없다. 천안문화원이 파행 전에 근무했던 사무국장은 “이제부터라도 찾아가야 할 과제”로 언급한 바 있다. 정체성 찾기는 하루아침에 ‘뚝딱’ 하고 찾아지는 것이 아닌 것. 그러므로 임개 내 완료가능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도시디자인 확대·강화도 그렇고, 장항선 폐철도부지 웰빙 푸른길 조성이나 상습재해 취약지역 해결 등을 ‘임기 내 사업’으로 규정한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흥타령 축제 세계화’란 말만 해도 세계화를 이뤘다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역사회 스스로 자만하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흥타령축제장을 찾아 즐기고 있는가. 세계화는 성급한 말이다.
셋째, 민자사업은 실패를 인정하는가
약속사업에 대한 시비부담액이 7461억원, 국·도비부담액은 9000억 정도로 현실가능한 범주에 있지만, 문제는 5조원이 넘는 민자사업에 있다.
가뜩이나 세계경제가 침체해 있고, 꽁꽁 얼어붙은 국내 내수시장마저 언제 풀릴 지 아득한 상황. 민자사업은 ‘천수답에 갈수기 비 떨어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천안시도 답답한 현실을 아는지, 돈이 적게 들어가는 약속사업이나 시비부담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다행스런 것은 이들 민자사업의 90%(4조7000억)가 지역경제에 몰려있다는데 있다. 도시개발이나 도로확충, 환경건축, 교육, 농촌개발, 문화체육, 경영행정 등은 민자사업의 부진함에도 별로 영향받지 않고 추진이 가능하다.
최근 민자사업에도 볕이 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지난 12월9일 가칭 천안예술의전당(주)과 천안종합문화예술회관 임대형민자사업 실시협약 체결식을 가짐으로써 천안종합문화예술회관(이하 예술회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3년만에 민간투자사업의 결실을 맛봤다. 예술회관 건립에 소요되는 민간투자비는 620억원이다. 국제 비즈니스파크 건립추진도 최근 열심을 내고 있어 기대수치가 높아지고 있는 민간투자사업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사업으로 볼 때 아주 미미한 부분일 뿐.
과연 천안시는 차질없이 약속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특히 중추에 해당하는 민자사업에 찬바람만 부는 상황에서 온기를 기대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데 관계자들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성무용 시장 이전인 2001년 말, 민선2기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초기상태에 머물러 있는 민자유치사업’이 거론된 바 있다. 당시 이근영 시장의 100대 공약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된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천안온천개발, 용연관광지 개발, 각원사 관광단지 조성, 천안민자역사 건립은 천안시 미진사업 6가지중 4건을 차지하며 실망감을 안겨줬다. 당시 서용석 시의원은 “대규모 민자유치사업이 관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며 ‘민자유치사업의 실패는 곧 민선2기 천안시의 실패’로 규정지은 바 있다.
거의 같은 상황이 민선4기 말인 현 시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넷째, 임기후 사업은 ‘또다른 약속’이다
99건의 약속사업 중 임기내 완료사업 67건에 드는 비용부담은 고작 5000억도 안되는 반면 임기후 완료사업은 32건에 7조원에 이른다는 것은 주지해볼 일이다. 임기내는 1000억도 안되지만 임기후 5조원 넘는 사업을 진행시켜야 하니 차기시장의 바지가랑이가 자칫 찢어지겠다. 차기시장에게 너무 가혹한 책임을 던져주는 일은 아닐까.
임기 후 지속사업으로는 ▷오룡웰빙파크 조성 ▷북천안IC 연결도로 개설 ▷북부스포츠센터 건립 ▷홍대용 전문과학관 조성 등이다. 시는 대부분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행정절차를 이행중이거나 연차사업으로 정상추진되고 있다고 밝히지만, 차기시장에게도 별도 공약사항을 갖고 그것들의 추진을 위해 막대한 사업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전 시장이 숙제로 던져주는 사업이 고까울 것이다.
시는 장기비전사업 32건 모두에 ‘정상추진’이란 꼬리표를 부착시켰지만 실제는 ‘아니올시다’이다.
임기 후 사업이란 실제 약속을 어겼다고도 볼 수 없지만, 지켰다고도 해석할 수 없는 일. 상당부분 추진된 세종시 사업도 정권이 바뀌면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 아닌가.
약속사업에 마지막 진정성 보여주길
약속사업 추진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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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약속사업 잠정확정(99건)… 2006년 7월
-시민과 약속사업 추진계획보고회 개최…
7월-민선4기 시민과 약속사업 확정…
8월-시민과 약속사업 추진평가단 위촉… 9월
-시민과 약속사업 추진계획설명회 개최… 9월
-약속사업 추진상황 실국장보고회 개최… 2007년 4월
-약속사업 추진상황 과·소장보고회 개최… 7월
-약속사업 추진평가단설명회 개최… 8월
-시민과 약속사업 추진상황보고회… 2008년 7월
-시민과 약속사업 추진상황보고회…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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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용 천안시장만큼 약속사업에 관심을 가진 자치단체장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내건 공약을 지키려 시행정과 노력한 것은 지역사회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노력으로 올해 상반기 ‘제3회 전국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경진대회’에서 활동분야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실천사례 서류심사와 발표, 질의응답을 통한 평가였지만 천안시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설정과 시스템 구축, 시민참여 원칙을 지키려 했다’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당시 발표내용을 요약하면 약속사업에 대해 중·장기 추진목표를 정해 연차별로 실행했고, 주요전략사업 추진을 위해 2개과를 신설했으며 정책자문교수단(62명)을 운영해 전문성을 높였다. 또한 약속사업 추진평가단을 구성해 매년 2회 자체보고회와 현장을 점검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성 시장과 시행정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기란 뭔가 2% 부족해 보인다. 약속사업을 지키려는 진정성을 보여줬지만, 한편으론 그같은 진정성이 오히려 의심스러운 부분으로 남는다.
성 시장에게 공약사항을 지키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뱉은 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낸다’는 신뢰성 확보 차원일까. 아님, 시장이 되면 정말 이것만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책임지고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소신과 사명감이 앞서서일까.
만일 후자라면 앞서 지적한 4가지 의문점에 어떤 해명을 던져줄 수 있을까?
‘어느 선생이 방학동안 부족한 공부를 하라는 취지로 숙제를 내줬다. 그러나 학생은 방학 내내 놀기만 하다 개학을 앞두고 몰아치기 숙제를 시작한다. 일기도 한달치를 쓴다. 결국 온 가족까지 동원되듯 해서 숙제를 끝낸다. 학생의 배움에 숙제는 어떤 도움이 됐을까.’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