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의 허수아비. 허수아비를 세워두면 새들이 못 올 거고, 그럼 풍년이 들 거라는 농부의 마음. “그래서 허수아비는 건강해야 하는 겨.”
20일(일) 오후 4시 천안시민문화회관 대강당에 한편의 공연이 올랐다. 천안무용협회가 만든 ‘허? 허! 허숭아비’다.
온 천지가 풍요로워야 할 가을에 한숨소리만 가득하다. 몇 년 째 계속되는 가뭄에 기우제를 드려보지만, 하늘은 쉽사리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 메마른 논두렁에 까마귀들만이 죽음의 날개를 퍼득거린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더욱 나약하고 초라하다.
땅이 기운을 잃은 것이 가뭄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들이 그들의 욕망을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과용하고 공기를 오염시킨 것이 주범이었던 것.
급기야 대지에 엎드려 사죄하는 것으로, 다시 자연의 축복을 소망한다.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의 소통자로 내세운 허수아비들이 춤사위를 시작하면서 대지는 지력을 회복되고, 다시 예전의 풍요로운 들녘으로 거듭난다.
도살풀이춤의 대가, 유홍란
한국무용협회 천안시지부(지부장 김경숙)가 20일(일) 천안시민문화회관에서 ‘허? 허! 허숭애비’를 공연했다. 천안예총(회장 윤성희)이 주최한 천안근현대예술인 선양사업으로, 올해는 ‘고 유홍란 선생 추모공연’이란 주제가 붙었다.
유홍란 선생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태어나 무용계에 두각을 보이며 많은 활동을 벌였으나 1984년 39세의 나이로 요절해 안타까움을 줬다. 입춤, 승무, 부정놀이, 한량무, 장고춤, 북춤, 검무, 부채춤, 설장고 등 춤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특히 도살풀이춤의 대가였다.
무용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천안에서 처음 무용학원을 개원해 후배양성에도 힘썼다. 1974년 창립한 천안국악협회 초대지부장을 역임했고, 해외에도 여러차례 공연을 다니며 우리 춤을 세계에 알렸다.
윤성희 천안예총 회장은 “척박했던 우리지역 무용계의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린 대선배로, 특히 우리춤을 일본 등 해외에 널리 알린 공로는 기억해야 할 업적”이라고 소개했다.
조한숙 천안국악협회장과 함께 그의 제자였던 김경숙 천안무용협회장은 “신종플루로 참 어렵게 올리게 된 작품으로, 회원들이 옷이 흠뻑 젖도록 연습했다”고 밝혔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