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천안예술제에서...
5개월여 만에 만난 박정숙 천안음악협회지부장은 무척 초췌해 보였다.
12월 음악행사 홍보를 놓고 어렵게 찾아간 불당동 집. 반갑게 맞아주는 얼굴은 보자기 모자가 반을 가렸다. ‘뭔 일 있던 건가?’ 현미차가 나왔다.
“7월달에 암 판정 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다른 행동거지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현미차도 항암에 좋다는 것 아닌가. 굳이 묻지 않았는데 쉽게 저간 사정을 ‘주르륵’ 풀어냈다. 마치 남일처럼….
원인 모를 척추고통에 1년을 물리치료만 받다가, 찾아간 병원에서조차 병명을 몰랐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불쑥 ‘암 아닐까’ 한 것이 꼭 들어맞았다. 그것도 3기 말로, 수술조차 하지 못할 형편. 이미 암이 이리저리 전이되고, 뼈에까지 ‘제 집처럼’ 들어앉아 버린 것이다.
“고통스런 생활이었죠. 견디기 힘든 아픔도 그렇지만, 이젠 죽었구나 하니 몸서리쳐지대요. 올해 수능보는 애도 있고 할 일도 많은데.”
급작스런 절망도 잠시, 빛이 찾아들었다. 1차 항암치료는 그렇게 힘들더니, 다음 치료때부턴 ‘견딜만한’ 고통이 엄습했다. 몇 번을 받은 치료결과 암덩어리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옛날같지 않아요. 이젠 수술하지 않는 방법도 있고, 치료기술도 급격히 좋아졌다나 봐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3년만 지나도 별개 아닐 거라고…, 이젠 머리도 다시 자라고 있죠.”
얘기중에 울컥 울음 한 뭉치를 꺼내놓은 것 말고는, 참 재잘재잘 잘도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죠. 투병하고 하면 보통 살도 빠지고 하는데, 난 안 그래요. 다이어트 기회를 놓쳤죠.”
희망이 웃음을 주고, 병을 낫게 하는가 보다. 이젠 ‘즐거운 마음’을 제일 좋은 약으로 믿고있는 박 지부장. 그래서 투병 중에도 손에서 일을 떼지 못했다.
그가 올해 남아있는 4가지 음악숙제를 꺼내들었다. 볼펜을 쥐고 이면지에 차곡차곡 써가며 설명해 준다. “5일에는 오후 4시 천안시민문화회관에서 제15회 천안합창축제가 있어요. 6개팀이 참여하는데 공연은 무료에요. 생각같아선 복지시설 분들이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은 꿈을 주고, 마음을 치유하잖아요. 다만 관객자격은 8세 이상이에요.”
<음악협회 12월 행사>
12일5일(토) ‘제15회 천안합창축제’
12월12일(토) ‘제25회 충남학생음악콩쿨’
12월19일(토) ‘청소년음악회’
12월29일(화) ‘회원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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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천주교·불교에서 각 1팀씩, 그리고 일반아마추어 3팀이 벌이는 축제의 향연. “꿈이 있다면 모든 종교가 참여한 ‘종교합창제’를 열고 싶어요.”
12일(토)엔 나사렛대 패치홀에서 오전 10시부터 ‘제25회 충남학생음악콩쿨’이 열린다. 피아노와 관·현악기만의 클래식 연주로만 진행한다. 대상2명에게 교육장상이 주어지는 이번 콩쿨은 5일까지 접수받을 예정이다. 또한 19일(토)일엔 이들 콩쿨 입상자들로만 무대를 채우는 ‘청소년음악회’가 오후 3시 천안박물관에서 열린다.
마지막 12월29일로 예정된 ‘회원음악제’는 천안음협 회원들로 구성된 연주공연으로, 올해부터는 기업체 공연을 추진하기로 했다. “매년 20·30명의 관객을 위한 공연으로는 취지가 무색해지더군요. 차라리 희망하는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의미도 깊다 싶어요.”
마침 ‘남양유업 목천신공장’이 손길을 보냈다. 일단 올해는 성사가 된 것. 좋은 음악을 보여준다면 내년과 이후 기업과 함께 하는 연주회가 어렵진 않을 것.
“큰 병에 걸리고 나선 세상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저절로 눈에 띄네요.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하고, 이타심도 줄어들었죠. 남들과 다툴 시간이 어디있어요. 즐겁게 생활하기도 바쁜데….”
인터뷰를 마치고 문밖 배웅하는 박 지부장에게 지인이 찾아와 ‘소담한 먹을거리’를 전해주고 갔다. 즐거운 대화중에 “사진 한 장 찍을까요” 했더니, “그럼 찍어볼까요” 하며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아무렴, 그래도 환자의 모습이 비치는데, 위트에 따른 행동이겠지 싶어 가방 속 카메라를 꺼내지는 않았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