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의 예술가들은 관객의 박수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관람문화가 많이 정착돼 공연관람 후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내고 관객들 스스로 기립박수를 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배우나 출연진이 인사를 하러 나오기도 전에 일어서서 나가버리는 관람객도 많았다. 사실 나 역시 과거에는 박수치기에 좀 인색했었다. 박수를 치러 온 박수부대도 아닌데 은근히 박수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그리고 감동의 길이만큼이 아닌, 그저 출연진의 인사가 끝날 때까지 예의상 박수를 치곤 했다.
요즘 뮤지컬의 경우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상업화와 대중화에 성공하면서 비싼 티켓을 구입해 공연을 즐기는 자발적 관객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장르별로 관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여전히 심각하다.
과거에 몸담았던 곳에서 ‘클래식 관객 개발’이라는 주제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클래식 공연에 집중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공연장이란 그저 엄마를 따라간 결혼식장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우선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의 마음 자세부터 교육해야 했다. 대공연장의 무대에 아이들을 한 명씩 세워보았다. 그리고 무대에 입장했을 때 관객들이 떠들고 시끄러울 때와 조용히 박수를 보낼 때의 느낌을 비교해서 발표하도록 했다. 또한 연주가 끝나고 들어갈 때 연주자가 퇴장하기 전에 박수소리가 그치고 떠드는 것과 무대 뒤로 들어갈 때까지 관객들이 박수를 쳐줄 때를 체험해보도록 했다.
아이들이 많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자가 되어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통해 출연자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홀로 선 무대에서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나아가 관객들의 태도가 출연자의 태도를 결정하고 공연의 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우리의 예술정책은 전문가를 키우는 교육에만 집중해왔다. 공연장에서의 박수가 왜 중요한지 관객의 태도를 가르치는 교육은 없었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이 관객 개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좋은 관객을 키우기 위한 스펙트럼의 예술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기존의 취미나 기능 위주의 예술교육이 일부 저변확대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그렇게 배출된 사람들이 진정한 예술애호가로 거듭났는지는 물음표이다.
이제는 남의 것을 잘 봐줄 수 있는 좋은 관객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이 고민되고 시행돼야 한다. 한 사람의 예술가를 키우는 것 못지 않게 한 사람의 좋은 관객을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다함께 인식해야 한다. 건강한 예술생태계는 두터운 향유층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연예술단체나 예술가들도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관객은 예술의 소비자인 동시에 창조자이며, 기부자이다. 단지 박수만 치는 존재가 아니다. 예술단체나 예술가는 본인의 예술적 성취나 작품성에만 관심을 갖기보다는 좋은 관객을 개발하는데 어느 정도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연간활동계획에서 10~20% 정도는 적어도 관객, 관람객을 위한 자발적 교육활동을 권유하고 싶다. 이제는 사회와 소통하고, 관객과 호흡하려는 예술가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
2003년 이후 정책화된 문화예술교육은 기존의 예술교육과 차별화되는 예술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예술교육이 가졌던 문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진정한 예술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거름진 토양이 있을 때 튼실한 나무가 자랄 수 있다. 토양은 돌보지 않고, 좋은 씨앗만 심는다면 가지가 무성히 자라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젠 전문가보다는 애호가를, 훌륭한 예술가보다는 좋은 관객을 육성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는 점점 메말라 가는 지역예술계에도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