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적은 관광이 아니었기 때문에 프랑스의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없었지만, 지하철이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파리시청 내부의 철학과 역사를 설명듣는 모습
작은 농촌마을의 시장과 의원을 만나러 차를 타고 이동할 때였는데, 지도를 봐도 쉽게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가 많았다. 그만큼 길이 구불구불하고 도로의 구조가 복잡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곳곳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도로를 반듯하게 내기 위해서 국가가 국민 개인의 집과 건물을 강제로 철거하거나 이주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개발, 뉴타운건설 등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대부분이 국민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고려하지 않고 막개발을 일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올랐다. 또한 살기위해 올라갔다 주검이 되어 내려온 ‘용산참사’의 현장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어느새 도로의 복잡함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파리시청은 ‘박물관?’
우리의 중요한 연수일정에는 파리시청 방문과 시의원과의 간담회도 있었다. 미관이 아름답고 박물관 같은 외형으로 파리시청은 유명한 관광명소이기도 한데, 우리는 일반인들에게 쉽게 공개하지 않는 시청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청 내부는 그야말로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파리의 역사와 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전시관이었다. 시청은 ‘국민들의 집’이라고 하면서 공무원의 안내가 시작되었는데 그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중세의 여러가지 양식이 어우러지는 벽화와 조각들을 볼 수 있었데,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가 프랑스와 파리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파리시청은 1871년 파리코뮌 때 화재로 전소되었지만 1882년에 원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고 했다. 광주항쟁의 성지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적 장소인 전남도청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겠다고 했던 우리나라의 현실과 무척 대비되었다.
파리시청 ‘명예의 계단’ 앞에서 안내받는 모습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작정 낡은 청사를 허물고 현대식의 새로운 청사를 고집하는 우리나라에서 각 지역의 전통과 역사는 점점 사라지고 잊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열화 배제한 대학명칭
우리는 프랑스에서 사회비판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8대학도 방문하였고 학생들도 만났다. 그런데 왜 대학이름이 숫자로 되어 있을까? 그건 바로 우리나라처럼 대학이 서열화 되어 있지 않은 평준화 정책 때문이다. 파리에는 총 13개의 대학이 있는데 파리1대학, 파리2대학, 3대학, 4대학,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1대학의 수준이 가장 높고 13대학이 낮은 것이 아니라, 각 대학별로 교육분야와 전공이 특성화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8대학은 사회학과 역사학으로 유명했다.
학생들의 수준도 높았다. 모든 교육에 평준화 정책을 실시하면서도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교육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평준화 정책은 학생들의 실력을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는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는 무상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프랑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고등학교까지 등록금은 물론이고 책과 준비물, 급식비용이 국가에서 지급된다.
우리를 안내한 현지 대학생 자멜에게 물어보니 1학기에 내는 돈이 30만원 정도 된다하니 1년이면 60만원이었다. 학생들도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의 등록금을 낸다고 했다.
1년 등록금이 이제는 1000만원 시대로 들어선 우리나라. 학비를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유흥업소에 나가기도 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처참한 현실이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등록금의 ‘취업 후 상환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등록금에 상한선을 정하는 ‘등록금 상한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당장은 고액의 등록금 때문에 고통 받지 않겠지만 잠시 그 고통을 유예하는 임시적 조치밖에 안될 것이다.
오히려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예산 전액을 삭감했던 경기도의원들을 볼 때 교육을 시장과 경쟁의 논리로 운영하려는 우리나라 교육철학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대형마트의 독점화 ‘차단정책’ 실효
연수의 막바지에 우리는 후원해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드릴 작은 선물이라도 사기 위해 파리 시내를 돌아다녔다. 짧은 시간에 선물을 고르기에는 마트가 적당할 것 같아 대형마트를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유명한 대형마트인 까르푸의 위치를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안내센터에 문의해보니 파리 시내에는 없고,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쪽인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대형마트의 시내 진입을 막는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1000㎡ 이상의 마트가 들어서려면 주민과 공무원, 주변 상인으로 구성된 지역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며, 일요일에는 폐점하고 오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을 두는 등 엄격한 규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의 경우 6만2000여 개의 자영업이 번창하고 있으며, 대형마트의 독점적 횡포로부터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파리8대학을 방문하여 대화하는 모습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형마트는 이미 전국적으로 포화상태이며 이제는 동네 골목 상권까지 장악할 목적으로 SSM(기업형슈퍼마켓)이 지역에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싼 맛에 선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의 상권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지역에서 벌어들인 마트의 수입이 지역경제에 풀리지 않고 외지로 유출되어 독점자본의 이익만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상권이 붕괴되어 몰락한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하고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점점 사라지는 소규모 동네 자영업자들과 지역주민이 함께 생존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장애인시설 전무 ‘우리스타일 찾기
프랑스의 모든 것이 우리나라보다 뛰어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파리 시내를 구석구석 연결하고 있는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체계는 매우 편리했지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또한 파리 시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어느 곳이든 자전거로 다닐 수 있는 무인 자전거 대여시스템인 밸리브(Velib)는 정책적 시사점이 있었지만, 관리의 민간위탁으로 인한 폐해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을 무작정 베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는 정책으로 승화시켜내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