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권력자, 진시황도 못 얻었던 ‘불로초’가 2200여년이 흐른 후 이종희(49)씨 앞에 떡 하니 나타났다. 언제였던가. 작은 것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때, 그녀의 눈에 ‘야생화’가 띄었다. 이후 야생화는 오래도록 함께 하며 그녀를 ‘소녀’로 남게 했다.
“야생화가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개나리의 노오란 색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이뻐요. 그거 모르세요?” 마지막 말을 의문문으로 끝내며 얼굴을 갸웃거린다. 마치 구구단도 못하는 중학생을 보는 것처럼.
“흔히 보는 거라고 얕보면 안돼요. 패랭이꽃 아시죠. 얼마나 흔해요. 하지만 향기를 맡아본 사람은 별로 없을걸요. 진짜 좋은 향기가 나요.” 10분이 흐르자 야생화에 대한 예찬은 도를 넘어섰다. 20분 후에는 어디까지 갈까.
지금 있는 신방동 환경사업소 옆 ‘야생화식물원’으로 터를 옮긴 지는 4년 여. 야생화에 한자락 안다는 사람들은 입소문을 듣고 한두번 다녀갔지만, 일반인에겐 아직 생소하다. 오히려 그 이전에 있던 삼거리공원 옆의 야생화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야생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화원을 운영한 건 7년이 됐지만, 훨씬 오래 전부터 개인화원을 가꿨죠. 오다가다 탐내는 이들에겐 선물로도 주고 원가개념 정도로 팔았죠.” 말이 원가개념이지, 실제 시중가격은 10배도 넘어선다.
야생화식물원에 있으면 평소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신방동 들녘의 화원은 때로 그림같은 정취를 자아낸다. 갖가지 야생화의 매력은 물론이고, 요즘엔 노랗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로 찰랑거리고 늦은 오후엔 빠알간 해가 황혼의 그림자를 남기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낮에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면 오무라드는 야생화 ‘용담’도 볼 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이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가볍게 한다. 종희씨는 아예 탁자를 한 켠으로 옮겨놨다. 굳이 주인이 없거나 바빠 못챙겨도 고즈넉이 머물고 갈 수 있도록 했고, 찻받침도 손수 야생화 등을 수놓은 천으로 만들었다. 커피도 ‘셀프’다. 최근엔 아예 야생화 공간을 조정해서 긴 탁자를 새로이 배치할 생각이다. “이곳이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제공하고 싶어요. 부담은 전혀 없이요. 웬만한 도심카페보다 훨씬 운치있고, 또 모든 게 무료잖아요.” 고운 얼굴에 활짝 웃는 모습이 그녀의 애칭 ‘연꽃같은 여인’처럼 흡사 야생화를 닮았다.
“혹시, 그런 거 알아요. 가을엔 어떤 야생화가 피어있을까 한참을 찾다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했을 때의 느낌을요. 마치 사춘기의 소녀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소리를 느껴요.”
야생화식물원에 있는 수백·수천의 야생화는 계절에 구애없이 번갈에 꽃을 피우며 사람들을 반긴다.
최근 마타리꽃을 찾던 어느날, 유량동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가 노란 군락지를 발견하곤 얼마나 감격에 젖었던가. 작은 것에도 ‘떨림’을 갖는 그녀의 마음나이는 16세 소녀다.
야생화 사랑은 급기야 ‘메머드’급으로 커졌다. 야생화를 좀 더 널리 알리자는 것으로, 계획은 ‘천안박물관’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그곳 박물관은 개관에 맞춰 야생화 군락지로 볼품있게 꾸몄지만, 이후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다 보니 세심함과 짜임새가 떨어지고 있다.
“박물관 연못가 바위틈에 예쁜 야생화 하나 심어놓으면 참 좋을 거에요. 담 밑에나 커다란 나무 밑에도 어울릴 테고, 벽면엔 넝쿨 같은 것으로 돌려도 좋겠어요.” 바위꽃야생화 회원들과 가끔씩 박물관 야생화군락지를 살피고, 가꿔가면 그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기분좋은 정원을 선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물론 야생화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찾으면서 어느덧 ‘야생화식물원’ 마니아가 생겼다. 어떤 이는 지인들에게 그곳을 자신의 정원으로 자랑하는 이도 있고, 또다른 이는 자신의 전용커피숍 쯤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뭐, 어때요. 이곳이 천안시민 모두의 정원이나 카페면…,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거든요. 야생화는 충분히 만인의 연인이 될 수 있고, 부족하지만 야생화식물원도 노력할 겁니다. 참, 조만간에 좀 더 천안다운 예쁜 이름으로 바꿀 거에요. 달라져도 못 알아보기 없기입니다.”
문의/ 011)9821-4293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