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소질은 결국 빛을 내나 보다. 학창시절, 김이자(65·그림터회장)씨에게 미술선생님이 말했다. ‘넌 그림에 소질이 있어.’ 하지만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쳤고, 감히 반발할 생각을 못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그림붓을 들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유를 얻었지만 세월은 저만치 가버렸다.
서울에 살던 그녀가 큰 딸이 사는 천안에 내려온 것이 94년. 그리고 2년 후 악착같이 붓을 잡았다. 천안문화원에서 입문해, 현재의 민화실(민성동 전 천안미술협회장)까지 13년. 디스크 수술을 받기까지 밤샘작업을 ‘물마시듯’ 했다.
그런 열정으로 출품작 대부분이 상을 탔다.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 특선, 한국여성미술대전 금상, 도솔미술대전 특별상, 한국여성미술공모전 특별상 등등.
최근엔 ‘2009 한강미술대전’ 비구상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위의 격려가 쇄도했다. 그녀가 항상 연습해온 건 구상부문.
“구상이 친근하고 좋잖아요. 비구상으로 출품한 건 처음이었어요.”
지루할 정도의 반복연습을 통해 스스로 색감을 터득했다는 그녀에게 장르는 큰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꿈의 대화’란 이번 작품은 꽃의 화려함을 단순화하고 서로 도란거리는 이미지를 연출했죠. 꽃은 가능성이고 미지의 세계를 나타내기도 해요.”
작품을 통해 본 그녀의 심성은 어떨까. 그녀가 염원하던 더불어 사는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품에서처럼 밝고 화려함을 좋아해요. 겉치레적인 건 아니고…, 음 뭐랄까. 수수함으로 만들어내는 화려함이랄까요.”
50이 넘어 낯선 천안에 발을 디딘 그녀에게 ‘친구 사귀기’는 하늘에 별따기. 취미삼아 시작한 그림그리기는 이제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결코 외롭지 않은’ 관계로 발전했다.
“집에서도 남편이 격려해주죠. 가뜩이나 관절(특히 손부위)염으로 그림작업도 어려워진 처지에 지인들과 함께 그림도 그리고 대화도 나누는 관계는 나를 즐겁게 해요.”
늦깎이로 시작한 그림세계. 그림이 아니라도 어디가나 배움터에는 제일 나이가 많다는 그녀. 스스로를 낮추고 맞추고 해서 제법 융화의 맛을 터득했다는 그녀.
“소원이 있다면 내 나이 70(회갑)이 되거든 맥간공예(자격증 소지·수준급)와 그림작품으로 개인전을 여는 거에요. 그때를 위해 더욱 열심히 배워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