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박물관 제1기 역사문화대학이 지난 19일(수) 6번째 강의로 모두 끝났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천안의 발자취를 더듬어본 1기 대학은 평균 150명 안팎의 시민들이 강의실을 찾았다. 수강생은 대부분 나이드신 분들로, 젊은이들이 향토역사에 관심 두지 않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물관측 이종택 학예팀장은 “이번 기회로 천안역사를 한번 훑어봤고, 다음엔 부분적으로 깊이있는 공부가 되도록 하겠다”고 운영방향을 밝혔다.
김양식 강사 ‘근·현대사 깔끔정리’
‘천안사람들은 데모를 잘한다!’
천안 동면에 사는 김양식 충북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천안사람들, 절대 온순하지 않다’고 했다.
김 위원은 근거자료로 1894년 9월 목천 동학농민군 무장봉기, 1904년 8월 직산광산 분규, 천안의병활동, 1910년 3월 천안인 가옥세·주세·연초세 반대시위, 1919년 만세시위 등을 들었다.
이중 만세시위의 경우 천안에서는 1919년 3월12일 목천보통학교를 비롯해 입장 광명학교, 천안면, 풍세면, 성환면, 그리고 4월1일 유관순 열사가 앞장선 아우내장터 만세시위에 이르기까지. 만세운동이 거센 지역이었다.
‘이유가 뭘까요?’ 김 연구위원은 공주로부터 받은 감리교 영향, 입장·직산·안성에 이르는 일본 금광수탈 자극, 천안역을 중심으로 한 서울과의 빠른 소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옛 입장역
입장역이 있던 자리
충남선·경기선 철도를 중심으로 한 역사도 되짚었다.
1922년 6월 천안-온양 충남선이 개통되고 1933년 10월 천안-장항간 충남선(1956년 장항선으로 개칭)이 완전개통됐다. 1925년 11월 천안-안성 경기선 철도개통은 1927년 9월 경기선(천안-장호원) 완전개통으로 확대되다 1944년 11월 경기선-장호원이 철거되고 1989년 1월에는 안성선(전 경기선)이 폐선되는 역사를 설명했다.
성환에 한때 양조장이 성행한 것도 역사를 안고 있다.
1929년 일본인이 양조장을 설립하자 밀주(집에서 담궈먹는 술)를 못만들게 한 때도 있었다.
“밀주단속이 나오면 뒷산에 올라가 숨기도 하고, 독을 땅속 깊이 묻어 감추는 일도 있었죠. 그러다 잡히면 독은 깨지고 벌금내고…,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죠.”
성환에 양조장이나 광업회사가 많은 것은 광부들이 많아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산을 중심으로 한 금광채집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1910년에 겨우 1만6153명이던 인구는 1930년 10만1344명으로 늘었다.
천안은 다양한 사회운동이 벌어진 곳으로도 알려졌다.
1924년 7월 입장면 사립강습소에서 백정 자제를 배척한다는 이유로 동맹휴학한 것을 사회평등운동으로 평가했다. 같은 해 9월 조상진 등 발기로 입장 노동회를 창립한 것은 노동운동의 소산. 1926년 9월엔 천안 가나다당 입당식 거행을 사상운동으로 보고, 1927년 3월 천안기자단이 조직된 것과 관련해서는 언론운동으로 내다봤다.
천안정체성 찾기는 ‘현재진행형’
김양식 연구위원은 ‘천안 근현대 100년의 반성’이라는 주제를 달고 천안이 가진 문제점과 발전방향에 대해 냉철하게 짚기도 했다.
우선 천안의 정체성이 약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교통도시는 강점도 있지만, 반대로 약점도 많다고 지적하며 “교통이 발달한 천안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떠나는 곳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천안·목천·직산이 1914년과 1963년, 1995년에 걸쳐 분리·통합한 것도 지역균열을 가져왔고, 천안을 양분하는 금북정맥과 고속도로도 발목잡는 바 됐다.
두 번째로 천안다운 문화형성이 부족하다는 것. 시청 홈페이지에 시 자랑거리로 내놓은 것을 보면 유관순, 김시민, 이동녕, 홍대용, 조병옥, 광덕산, 용연저수지를 언급해놨다. “이 정도 뿐입니까.” 그는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전통문화가 부족하다고 문제삼았다.
세 번째는 천안을 이끄는 리더 부재를 들었다. 일제하 고등학교가 없었고, 해방 이후로도 대학이 없어 유능한 인재가 고향을 떠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현재는 13개 대학이 있으나 “많은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라는 지역대학의 역할부재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또한 천안에서 내세울만한 향토기업이 없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이 발전하기 위한 향후과제로 ▲정체성 발굴과 지역공동체 강화 ▲지역연구-연구시스템 확보 ▲천안의 문화적 특성과 브랜드화의 세가지를 짚었다.
특히 21세기는 문화를 통한 지역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별화 및 경쟁력 확보를 통해 디자인의 시대를 앞서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