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분문화 강의에 130여 수강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천안박물관 역사문화대학 4강 강사로 나선 사람은 이남석 공주대 사학과 교수다. 94년 백석동 3공단 토성조사에 참여하기도 한 이 교수는 ‘백제 고분문화의 전개’라는 주제로 지난 29일(수) 강의자로 나섰다.
강의에 앞서 ‘무령왕릉 어금니 한 개의 비밀’이란 동영상을 보여줬다. 무령왕릉을 발굴하면서 단 한 개의 어금니만 발견된 것을 놓고 역사를 재추적해 들어가는 다큐멘터리로 꾸며졌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교수는 “어느 때부터인가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죽은 시신을 중요시하는 관념이 형성됐다. 때문에 인류 삶의 흔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남겨진 것이 이들 주검을 위한 시설들일 것”이라고 이야기를 풀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매장관념이 불분명한 구석기를 지나 신석기에 이르면 패총 속에서 사람의 뼈가 출토되고, 청동기 시대에는 고인돌과 석관묘가 나타나면서 무덤 형태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다양한 유형을 갖고 있는 백제묘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도읍지는 적석총으로, 지방 토착묘제는 토광묘, 옹관묘, 수혈식 석곽묘가 집중적으로 보인다.
토광묘는 천안 화성리·용원리를 비롯해 청주 신봉동에서 집중적으로 조영된다.
후기는 횡혈식 석실분이 적석총을 대신해 백제 지배층의 주묘제로 대체된 시기이다.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말기에 이르면 적석총은 자취를 감춘다.
특이한 것은 무덤 속 유물들은 제도문물이 발전할수록 적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유물은 죽은 이의 당시 사회적 지위와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되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같은 시대를 비교해 볼때 일본인의 무덤에 제일 많은 유물이 들어있고, 이어 가야, 신라, 백제, 그리고 고구려 순으로 고구려인의 무덤에선 유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천안지역의 한 분묘에서 ‘환두대도’가 발견됐는데 둥근 고리 안에 용과 봉황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 교수는 “이같은 환두대도는 왕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천안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의문이다”고 말했다.
자료에 의하면 용과 봉황 문양의 환두대도는 고귀한 신분의 상징으로, 무덤 주인의 신분을 말해주는 일종의 증명서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