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좀 원없이 찍고 싶습니다.”
1974년, 먹고살기 위해 소년직업훈련소 사진촬영공과에 다닌 것이 사진과 첫 인연을 맺게 됐다는 조창희(53) 사진작가. 30년을 한몸처럼 카메라와 붙어 산 그는 최근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출사를 자제하고 있다. “찍고싶은 것이 가까운 평택에 있는데도 못가고 있어요.” 시쳇말로 ‘죽을 병’은 아니지만, 멀리 나다니기에 불편한 몸은 번거로움을 안겨준다.
작가일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충남도 사진작가협회 사무국장과 그가 속했던 휴먼포토 동아리회장이 된 것. 동료회원들을 돕는 것을 제 일처럼 반겼다.
그렇다고 작가의 기본인 ‘작업’에 손을 뗀 것은 아니다. ‘리얼리티’를 찾아 그가 선택한 것은 가까운 시장을 소재거리로 삼는 것. “시장에서 장사하거나 구경하시는 나이든 어르신네들의 표정을 앵글에 담고 있어요. 특히 깊게 패인 주름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고, 세월의 형상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는지를 알려주죠.”
장터출사는 아직도 그에게 낯섬과 설렘을 가져다 준다. 30년동안 그가 서있었던 곳은 사건사고의 현장, 장터는 몸 때문에 바꾼 새로운 사진세계였다.
“90년대 초쯤, 울산 현대파업이 전국을 들썩인 때가 있었죠. 방송에서 접한 후 곧바로 짐보따리를 싸서 사건현장으로 달려갔죠. 당시는 신문·방송기자들도 얼씬하지 못한 때로, 조심스럽게 찍으려다가 쫓겨났죠. 죽이려는 듯 달려드는 통에 뒤로 물러서며 세방을 찍었는데 제대로 나왔겠어요. 너무 억울해서 울었죠.” 카드뮴 중독으로 죽은 현장을 찍겠다고 서울로 달려간 것이며, 전국의 굵직한 사회적 사건사고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왜, 위험한 사건사고에 매달렸냐구요. 아마 광주민주화운동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당시는 사우디근로자로 있었는데 거기서 적나라한 보도실상을 봤어요. 충격이었죠. 84년 국내에 들어와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하면서 더욱 사회고발현장에 대한 사진가치를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젠 나이도 들어 사건현장에 뛰어들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그에게 소망 하나가 있다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총정리해 개인전을 여는 것. 서울에서 1번, 지역에서 1번, 35년 사진작가로 방점을 찍는 일은 그에게 더없이 중요한 일이 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조만간 기회가 찾아오겠죠.”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