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예가, 배방남(68·풍세 민학전가 원장) 선생이 모처럼 불같이 화를 냈다. “조용히 산골에 묻혀 살려고 하는데 도저히 못참겠소” 한다. 혈압이 한참 올라가 말까지 더듬는다. “천안의 문화예술인들을 이렇게도 업신여기다니, 도대체 이 따위 잡스런게 어딨소.”
얼마전 그는 전통기·예술보존협회(회장 소귀분·천안)가 주최한 ‘제3회 전통맥전’ 팜플릿을 보게 됐다. 삼분의 이는 다 아는 사람들. 찬찬히 살펴보다 이상한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천안문화재단 추진위원’, ‘천안문화재단 1호’, ‘문화탐사 상임이사’ 등이다. ‘천안에 문화재단이 생겼나 보구나.’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주 괘씸합니다. 추진위원은 이해가지만, 천안문화재단 1호가 어딨소. 문화탐사 상임이사는 또 뭐고. 전화했더니, 다들 발뺌하고 일부는 찾아와 사과합디다.”
팜플릿은 양력도 중복시켜놨고, 작품도 예전거로 올려있는 등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팜플릿을 엉터리로 만드는 게 어딨소. 거기엔 천안시장과 양 국회의원, 중앙의 박찬수(무형문화재) 회장의 축하인사글도 실려있는데… 그런데 시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는 ‘모른다’고 합디다. 몰라도 그런 사실이 있는가며 확인해 조치하겠다고 해야지, 엉터리책자에 떡 하니 축하글 써주고 책임없다 하면 돼냐구요. 축하글 등이 들어있는 팜플릿은 그만큼 신뢰를 갖게 되고, 그럼 엉터리 내용 등도 인정해주는 꼴이잖아요.” 그는 전국의 명장·명인들도 참여하고, 관심갖는 협회의 전시회 팜플릿이 엉터리로 만들어 뿌려짐으로써 천안과 천안문화예술인들의 명예 또한 크게 실추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배 선생은 “엉터리책자를 만든 장본인은 되려 큰소리고, 시는 모르쇠로 대답하고…, 가만 안둘 겁니다. 문화관광부 장관이든 누구든 이런 못된 행위와 잘못을 알려야 되겠소.”
석공예쪽으로는 그에게 배운 바 있는 소귀분 협회장에겐 이미 제작·배포한 1000부를 모두 회수해 소각시키라고 말해놓았다. 협회는 교정을 대충 본 죄, 잘못 나왔어도 문제삼지 않고 배포한 죄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 “교정본 회원이 분명 왜 그같은 경력이 들어가냐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회원 경력이 너무 없어서 넣은 거라나요. 다투기 싫어서 말았데요.” 소 회장은 뒤늦게사 교정회원의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그만 두라고 권하기도 해요. 그게 스스로에게도 좋을 거라고. 분통 터뜨려봤자 누가 벌벌 하냐고….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예요. 잘못됐으면 정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옳잖아요. 세상, 너무 막가는 거 아니에요?”
배 선생은 이야기를 옮겨 문화예술인 세계의 문제점이 너무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해 명장심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작품을 반만 완성해 놓고, 당일 현장에서 나머지 반을 완성했다. 그런데 완성작품을 들고나온 사람에게 명장직을 주는 것 아닌가. “당시 노발대발 했었죠. 작품이 그 사람이 한 건지 아닌지 어찌 알고 명장의 명예를 섣불리 주느냐 따졌죠. 그쪽에서도 나중에 잘못됐다고 인정하더군요. 그 후 그같은 문제점은 고쳐졌습니다.”
그는 “최근에도 한 인간문화재에 대해 실사를 벌인 결과 기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걸로 확인돼 첫 인간문화재 해제결정을 내린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죠” 하며 그의 제자가 스크랩한 신문쪽지를 보여줬다.
“예술인이라면 순수해야 합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예술을 하다보면 그건 예술이 아니에요. 작품도 그 장인의 혼이 담겨지는 것입니다. 사심을 갖고 만든 작품이나 혼에서 어찌 좋은 작품이 나오고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이뤄낸 가치만큼 인정받는 것이 예술인의 마음자세죠. 그걸 꼭 지켰으면 합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