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업이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31명의 반 아이들. 천안 서초등학교 6학년 4반 담임을 맡고 있는 남호진(25·여) 선생은 고단한 몸을 한껏 늘여 기지개를 편다. ‘또다시 하루가 갔구나.’ 책상에 수북히 쌓인 아이들 과제물. 얼마나 잘 해 왔는지 살펴보고 몇자 글 적는 것도 금방 2시간이 지나간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반복하는 삶. 딱히 싫은 것은 아니지만 때론 젊은 혈기가 억눌리는 것 같아 답답함이 느껴진다.
대학때 악착같이 배운 기타마저 없었다면 마음 한구석이 큉 했을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시험에 합격하고, 천안에 내려와 발령받기까지, 그리고 선생으로써 적응하는 시간까지 2년여가 걸렸다. 그동안 연인처럼 함께 했던 기타를 다시 손에 거머줬다. 천안의 모 밴드에 들어갔다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만 뒀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을까. 인연인지 한명한명 모이더니 또래의 밴드가 결성됐다. 이름은 뭘로 지을까. 수많은 생각 끝에 첫모임때 만났던 여우비를 인연삼아 ‘여우비밴드’로 결정했다.
다들 몇 년씩 내공을 닦은 실력자들, 게다가 보컬 정근영(29)은 꽤 이름있는 락커다. 이들의 목표는 ‘프로’. 언젠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연주할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강하다.
가끔은 생각한다. 과거의 어느 때, 왜 기타리스트가 되려 꿈꿨을까. 그저 ‘관심’이 있었다는 것. 가끔 체리필터와 크라잉 넛의 노래를 들으며 기타로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그래선지 대학에 가자마자 아무 망설임 없이 밴드부 문을 열었다.
밴드활동은 학교선생으로 사는 재미(또는 보람)와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매주 일요일, 직장인들은 집에서 뭉기적거리거나 쇼핑에 나설 즈음 호진씨는 그들만의 연습공간으로 향한다. 똑같은 꿈을 꾸고,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끼리의 정겨움은 때로 혈육보다 진하다.
카피곡만을 연주하지 않는 것은 여우비의 자존심. 음악에 색깔을 입혀 재창조하는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낚시꾼이 월척을 낚을 때처럼 짜릿하다.
어딘가 몰두할 수 있다는 열정은 모든 일에도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하나의 연주에도 N분의 1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 각자 ‘10점 만점에 10점’을 맞기 위한 도전 자체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밴드의 생명은 공연. 올해는 천안과 전국에서 열리는 크고작은 행사에 출연할 예정이다. 올해의 꿈이 있다면 10월경 ‘단독공연’을 가지는 것. 머지 않아 큰 무대에서 ‘여우비’의 이름이 갈채받기를 희망한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