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옥(50·성정동)씨가 5년간 달고있던 수강생 딱지를 뗐다. 서산시가 주최하는 ‘안견미술대전’에서 덜컥 문인화부문 대상을 거머줬기 때문이다. 안견미전의 초대작가가 된 오씨. “화가라니요, 어림없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고, 이제 시작인데요.” 하지만 ‘작가=화가’란 등식이 그에게도 해당되면서 가까운 지인들은 ‘화가님’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한번 매달리면 미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오씨에게 문인화와의 첫 인연은 5년 전. 궁색한 삶에 치이다 취미삼아 여성회관을 기웃거린게 문인화반과의 만남이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걸까. 배움에 목마름을 느끼며, 강사인 취산 김월식 선생의 취산서화실(성정동 소재)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여성회관에서, 그리고 매일 최산서화실에서 살았다. 붓 잡고 날밤 샌 적도 셀 수 없었다. 수많은 공모전에 도전했고, 어느땐 화도 나고 섭섭해 울기도 여러번. 그의 열정이 지난해 강릉시 주최의 ‘제8회 신사임당 미술대전’에서 문인화부문 최우수상(1등)을 수상하며 진가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씨를 가르친 취산 선생도 “남들 10년 공부한 것과 맞먹는다”며 “나를 거쳐간 제자가 200명이 넘지만 오씨만한 열정을 가진 이가 없다”고 칭찬한다. 익히 남다른 열정이 있음을 안 취산 선생은 그의 호를 ‘빼어나다’는 뜻을 담은 ‘수헌’으로 지어줬다.
스스로를 미쳤다고 말하는 오씨의 문인화는 유독 ‘묵죽’만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에 90%를 차지할 정도. “그리다 보면 묵죽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합니다. 사시사철 푸른 사군자중 하나이면서도 강직한 기품이 나를 반하게 하죠.”
대나무는 자고로 사군자중 가장 그리기 어렵다고 알려져 왔다. 그래서 조선시대에선 화원을 뽑을때 대나무를 그리는 자에게 가산점을 줬다고 한다. 대나무는 글의 오체(전서·예서·행서·해서·초서) 기법이 뚜렷하게 녹아있어, 서예실력도 빼어나야 한다는 것.
“나같은 무식쟁이에게 문인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이제 욕심이라면 더욱 열심히 정진해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는 것입니다.”
오씨는 올해 신사임당 미술대전에서 특상을 받고, 김삿갓 휘호대회에서 우수상을 받는 등 상복이 터졌다. 그에게는 올해가 문인화가로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