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박씨 종중의 박용기(77·우측) 상임부회장이 성무용 천안시장에게 유물기증을 약속하는 기증원을 전달했다.
지난 1일(월) 고령박씨 가문에서 교지 유물 500여 점을 천안시에 기증했다. 이날 기증한 유물은 종중재실이 있는 북면 은지리에 보관해 왔던 교지, 첩지, 서찰, 비문, 호패, 인장 등이다.
경상도 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교지, 경상도 대구도호부사 교지(1728년), 박문수 호적단자(1728년) 및 과록, 고령박씨 종중교지, 시권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들이다. 또 암행어사 박문수 초상화(보물 제1189호) 2점도 대여·전시하기로 했다.
1일 고령박씨 종중의 박용기(77) 상임부회장이 천안시청을 방문, 성무용 시장에게 유물기증을 약속한 후 시는 속전속결로 유물들을 천안박물관으로 옮겼다.
시 관계자는 “주로 문헌류의 유물이 많아 당시 생활상이나 정치상황, 가족사 등을 파악하는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밝혔다.
유물 빠져나간 종중재실은 ‘썰렁’
박문수유물관(인접해 보이는 것이 고령박씨 종중재실이다)
고령박씨 종중재실 내 유물을 보관해온 충헌사 전경
천안박물관에 기증된 유물 500여 점.
한편 유물 500여 점이 빠져나간 고령박씨 종중재실은 썰렁한 분위기다. 빼곡이 차여있던 유물들이 나간 충헌사는 텅 비어버렸다. 종중재실에서 수십년동안 이들 유물을 지켜오던 박용희(73)씨와 그의 처는 아쉬움이 크다. “어쩔 수 있나요. 이젠 도둑맞을 걱정은 덜게 됐으니 다행이죠.” 박씨의 처는 큰 시름을 덜은 듯 내뱉았지만 속내는 후손으로써 제대로 지키고 보전하지 못한 현실이 죄스럽다는 듯 얼굴 가득 섭섭함을 담아냈다. 지병을 앓는 박씨 수발을 들며 예전보다는 더욱 조용히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의 위안.
박문수 어사묘가 있는 북면 은지리 고령박씨 종중재실은 한때 부흥을 꿈꾸기도 했다. 1993년 천안시는 종중재실 옆에 ‘충헌공 박문수 유물관’을 지었다. 하지만 고령박씨 종중재실은 유물들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허술하게 지었으니 어떻게 내놔요. 한번은 중간창문 간살을 떼어내고 도둑이 들었죠. 당시 유물이 있었다면 상당부분 분실했을 겁니다.”
이후로 시는 내부보완을 취했으나 역시 시건장치 등 도둑당할 위험이 높자 종중재실은 유물관을 불신, 지금까지 종중재실 내 충헌사에 보관해 왔다. 이후 10여 년동안 도둑이 2번 들었다. 제 집 들듯 귀중품만 들고 달아나 찾질 못했다.
“유물을 보전하지 못한 죄도 큰 데다 도둑도 무섭습니다. 도둑 든 것을 알아도 4명의 자식이 장성해 나가 사는 마당에 늙은이 둘이 어찌 나서겠습니까. 자물쇠를 단단히 해봤자 쇠줄로 끊고 들어오는데 막을 방법도 없었죠.”
그러다 최근 천안박물관이 지어지고, 관내 각종 유물들을 수집하자 고령박씨 종중재실은 ‘안전한 보전’을 위해 기증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박물관은 고령박씨 유물로 풍성해졌지만, 박문수 어사묘가 있는 고령박씨 종중재실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점과 시예산으로 마련한 유물관이 15년간 방치되다 쓸모없게 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