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유일의 인라인 전용구장이 있는 종합운동장에 매일 밤 출근도장을 찍는 사람이 있다. 2003년부터 인라인 스케이트 매력에 빠진 전영택(61)씨.그의 나이 60이 넘었지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기백이나 기량은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 않다. “우리같은 족속은 뭐라도 한번 빠져들면 무섭게 빠져듭니다. "천안에서 인라인 최고령자는 70세. 하지만 극성스럽기는 자기가 최고란다.
실제 그의 인라인 사랑은 하루도 빠짐 없다. 헬스장을 거쳐, 저녁때면 인라인 장비로 완전무장하고 종합운동장 내 인라인 전용구장에 나선다. “이왕 타는 거 잘 탄다는 소린 들어야죠. 대충대충 하는 건 내 성미에 안맞아요. 자고로 시작하면 끝을 봐야죠.”
매일 200m 트랙 바깥쪽을 100바퀴씩 돌면 정확히 21㎞가 된다. 보통 대회가 21㎞와 42㎞가 있으니 매일 대회 출전하는 기분이 드는 것. 진을 빼고 나면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된다.
그의 욕심은 전국구, 결코 천안에만 머물길 원치 않는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한다. 보통 21㎞ 대회인데 국내에는 서울과 인천, 춘천대회 3곳만이 42㎞대회를 갖고 있다.
“2006년부터는 국내 최고 큰 대회인 108㎞ 대전 울트라대회도 참석하고 있죠. 500명만 출전시키는데 대부분 선수들이 완주조차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울트라 대회입니다.”
최고기록이 3시간20분대인데, 11월에 개최하다 보니 저체온증까지 찾아와 포기자가 속출한다. 전씨도 4시간을 달리다 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릎통증이 심해 아직 완주해 보질 못했다. “2006년엔 73㎞에서, 그리고 2007년엔 75㎞에서 주저앉았죠. 올해는 90㎞를 목표로 죽어라 연습하고 있습니다. 하체단련이 중요해 헬스장에서도 하체단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내년을 108㎞ 완주의 해로 잡고 도전중이에요.”
그의 열정에 비해 천안의 인라인 환경은 너무 열악한 편이다. 인근 평택에도 대여섯개가 있지만 천안은 한 곳뿐. 게다가 고급화된 구장을 성의없이 만들어놓다 보니 오히려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투덜투덜.
“출입문을 코너부분에 둬놓고 있질 않나, 위험한 돌출시설이 버젓이 안전을 위협하질 않나. 이 뿐이면 말을 안해요. 작은 돌조각에도 넘어지는 부상우려가 있는데 공무원들의 출퇴근 지름길로 사용하는가 하면 비만 오면 물빠짐이 안좋아 낭패를 봅니다. 자랑 같지만 비오는 날은 사람들 몰려들기 전에 걸레로 구장 전체 물기를 닦아내는데 한두시간씩 걸리죠. 청소용구가 없어지고 하는 통에 시에 비치함을 설치해달라 하는데 통 반응이 없어요.”
최근에는 무슨 일인가 야간 조명등이 한쪽만 켜져있어 사고위험이 더욱 커진 상황. 며칠을 참다 못해 시청 인터넷신문고에 시급히 조치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안시도 이제 50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인라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꾸 느는데 구장 한 개로는 수요를 감당치 못해요. 아이들은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는 터라 우리네 같이 씽씽 달리는 사람들은 부딪쳐 사고날까 두려워 제대로 즐기지도 못합니다. 이 때문에 저 같은 경우는 주말에 아산 인주공단이나 평택을 찾아갑니다. 인라인에 대한 관심을 시행정이 체계적으로 가져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척추협착증’이 있는 전씨의 인라인 사랑은 이렇듯 유별나다. “인라인 뿐만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모든 잡기에 능했어요." 빙상스케이트에 흠뻑 빠진 적도 있었고, 볼링도 충남도볼링협회 총무이사 경력의 ‘에버리지 190대’의 프로같은 아마츄어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오랜 낚시광에 당구도 4구와 쓰리쿠션에 수준급, 수석에도 조예가 깊다. 83년 천안에 내려오며 카드(도박?)도 ‘내가 보급했다’고 할 정도로 베테랑 카드광. 그에 앞서 젊은 시절에는 베이스기타를 전공한 음악인으로 가수들과 공연도 많이 해봤고 부동산 중개인으로도, 2001년도 전에는 냉동탑차를 운전하는 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기까지는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1980년대 한때 볼링을 시작했을땐 한달에 100만원 이상을 볼링장에 갖다 바쳤죠. 당시 천안지역에 이름난 볼링선수를 1년만에 따라잡겠다고 공표했는데 딱 6개월 걸렸습니다. 말 그대로 목숨바쳐 즐기는 타입이죠.”
하지만 무대포적인 그의 운동에도 나름대로 철학이 있다. “절대 즐기는 외에 한계를 넘진 않아야 합니다.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의 경우 두 족속이 있죠. 하나는 주머니 사정 안보고 끝까지 베팅하다 폐인이 되는 사람과, 즐길 수 있는 선 안에서 베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도박이고 다른 하나는 레져죠. 나는 후자에 속합니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