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화원 파행이 시작된 지 1년10개월. 그동안 문화원이 한 일은 지역사회의 정상화 바람을 ‘모르쇠’로 일관해왔을 뿐이다. 파행의 단초가 됐던 이정우 사무국장이 자진사퇴했고, 최근 파행의 주범인 권연옥 문화원장마저도 물러났다. 하지만 정상화의 물꼬는 또다른 곳에서 발목이 잡혀있다.
임병현 부원장을 원장직무대행 체제로 운영중인 천안문화원은 요상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사회가 눈에 띈다. 전 이사회가 ‘일괄사퇴’란 목소리를 냈지만 11명이 아직 등기이사로 남아있어 권연옥 전 원장도 이를 감안해 나머지 19명만을 새로운 이사진으로 구성해놓고 있다. 신·구 이사가 교묘히 혼재돼 있는 형태에, 19명의 이사들은 등기가 돼있지 않아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다.
문화원 파행의 책임을 지고 일괄사퇴 목소리를 냈던 기존 이사들 중에 4명이 현 이사로 재선임된 것도 아이러니. 이들 중 임병현 이사는 현 원장직무대행이 됐다.
권연옥 전 원장이 아직 이사로 남아있는 것도 문제다. 문화원에 2년간 업무를 마비시키고, 전국적 망신과 시민불편을 끼친 심각성에 비춰 ‘원장직은 물러나되 이사로 남겠다’는 발상은 그동안의 파행을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그나마 전 문화원장이 또다시 문화원장에 선임될 수 없다는 것이 위안이다. 한 문화관계자는 “권 원장측 명분대로 2번의 원장을 수행한 것으로 치면 ‘연임까지만’으로 규정돼 있는 문화원법상 원장직분은 이제 문화원장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고 전했다.
‘고양이에게 생선맡긴 격’이란 말이 있듯, 문화원 파행의 책임이 있는 기존 이사진, 전 원장이 선임한 새 이사진의 정통성은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 이 때문에 원장과 이사진 모두 퇴진을 요구한 각계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일 문화원장실에서는 정승훈(52) 문화원 이사를 신임 사무국장에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공방에 있는 이사회가 자기식구인 이사를 사무국장으로 선임한 것은 상식적이지 못한 일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한 이사는 “나같은 경우 문화원 정상화를 위해 이사진 일괄사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사들이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같다”며 이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임병현 원장직무대행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상화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각계 의견을 수렴중에 있다”며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전했다. 사무국장 인선은 정상화에 필요한 수순으로, 별 문제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으며, 신임 문화원장 선임도 절차를 밟아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천안시행정과 천안예총, 천안문화원 내 수강생 등이 대체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천안문화원 이사회가 어떤 정상화 절차를 밟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