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페스티발 2008’을 냉정히 바라보면 2007년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프로그램이 같거나 닮아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 5회째를 맞는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정상에 선 그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야 6부 능선을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벌써 안주하려는 모습이 좋게 보이진 않는다.
올해 판페스티발이 지난해와는 달리 운영상에서 체계적인 ‘안정성’과 각 행사 자체가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받는 것은 다행이다. 25일(일) 밤 폐막공연에 만난 시 문화관광과 안동순 팀장도 “예전보다는 훨씬 질적으로 나아졌다”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판페스티발의 성공여부는 지역의 예술인과 일반시민의 소통이란 주제를 놓고 두가지 측면에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예술인들의 무대가 있었는가 하는 점. 향토예술제라면 명실공히 그 지역 예술인들의 실력이 ‘향토성’을 부여받고 뽐내어져야 한다. 하지만 올해 천안예술제에서도 불행히 무대에 선 예술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막공연조차 지역 예술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나마 체면을 살린 것은 연극협회였다. ‘돼지사냥’에 5명의 연극배우들이 출연해 열연을 펼쳤으며, 예전과는 달리 관객과의 소통이 용이한 소극장을 택한 점, 그리고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코믹극을 들고 나와 호평을 받았다. 이외 문인협회의 ‘시화전’과 ‘책읽어주는 사람들’의 프로그램이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다.
또다른 시각에선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무대가 얼마나 다양하고 매력있게 펼쳐졌느냐 하는 점에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일단 ‘다양성’에서 높은 점수가 매겨진다. 미술협회는 미술실기대회를 비롯해 거리의 화가, 그림길 등에서 시민참여를 유도했다. 미술협회 또한 판프린지나 거리의 음악제로 시민과 소통했고, 문인협회는 민촌백일장과 책 읽어주는 사람들로 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연예협회는 천안가요제로, 무용협회는 흥타령 춤 경연대회와 청소년 댄스경연대회, 캐릭터 의상입고 사진찍기로 일반인 참여를 북돋웠다. 이외에도 명동거리의 주인, 명동상인들이 주축이 된 시민장기자랑이 있었는가 하면 천안예총 주관의 페이스페인팅, 풍선아트, 거리의 마술 등이 시민들과 호응했다.
한편 올해 예술제의 숨은 주춧돌은 단연 음악협회가 주관한 ‘판프린지’였다. 지난해보다 두배 이상 많은 34개팀의 참여도는 압권. 참여인원만 200명이 훌쩍 넘는다. 가장 많은 단체에 가장 많은 참여인원을 기록한 판프린지는 넉넉한 예산이 사용되지도 않은, 그야말로 예산대비 효과가 가장 높았던 공연이었다.
예술제가 남긴 편린들
사진협회원들 ‘목수 되다’
야외전시장을 마련한 사진협회. 문화동청사 한쪽 주차장을 전시공간으로 이용하다 보니 막노동이 따로 없었다고. 실내공간에서만 해봤던 전시회는 하루 대관료도 달랑 7만원. 하지만 올해는 너댓개 천막을 치고, 사진전시를 위해 판넬벽을 만들고 하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돈은 돈대로 들어갔다고 푸념. 게다가 사정상 전시공간이 이어지지 못하고 한 개는 멀찌감치 떨어져 모양새도 볼품 없어지고 말았다. 위로가 된 것은 준비하는 회원들의 친목과 일부 관람객들의 위안의 한 말씀.
‘패션쇼에서 노래자랑’ 탈바꿈
올해는 명동거리 상인들도 ‘명동패션쇼’를 야심차게 기획, 초반부터 관심을 모았다. 거리로 나온 예술제의 한 속성이 ‘지역경제 활성화’. 명동의 의류점들이 주축이 된 패션쇼는 기획단계부터 좋은 냄새를 풍겼다.하지만 정작 당일이 되자 대 반전이 시작됐다. ‘패션쇼’로 명명한 무대배경이 무시당한 채 ‘시민노래자랑’으로 변질된 것. 급조된 상황이지만 즉석에서 18개팀이 참여했고, 시간관계상 더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호응이 컸지만 상인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결국 패션쇼는 다음기회로 미뤄야 했다.
천안가수출신 ‘이미영’ 호응 뜨거워
화려한 무대를 선보인 23일(금)의 개막공연과는 달리 폐막공연은 별도 준비 없이 ‘7080 통기타축제’로 대신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던 통기타 무대가 ‘이미영’이란 천안출신 가수의 열정적 무대에 힘입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지난해 고향 천안에 정착한 이미영씨는 천안대중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 KBS대학가요 금상 수상자 출신다운 가창력을 뽐내며 관객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맨 마지막을 장식한 가수 이남이와 더불어 멋진 폐막을 장식, 유종의 미를 거뒀다.
내년 예술제는 ‘돈’이 문제다
이번 예술제를 후하게 쳐준다면 ‘제 궤도에 오르기 직전’으로 평할 수 있다. 적어도 1억5000만원이란 예산의 한계에서 보면 8개 협회가 3일간 거리행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 알려지기론 한 개 협회가 예술제 준비에 받은 예산은 7000만원으로 각 1000만원이 안된다. 한 개 협회가 서너개의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으니, 말이 좋아 ‘예술인 주축의 예술제’지 정작 예술인들에겐 죽노동만 강요당한 꼴이다.
내년엔 한 5억원쯤 떼주면 어떨까. 각 협회에 5000만원씩 주고 진정한 향토예술제가 무엇인지 보여달라 주문한다면 통하지 않을까.
잘못될 것을 두려워해 좋은 시도마저 하지 않는다면 예술제는 올해에서 성장을 멈출 것이다. 긍정적인 노력을 통해 발생하는 ‘시행착오’는 성공의 지름길이다. 1억5000만원의 예산이 수반되기까지는 1회때 3000만원도 있었고 3회때는 2억원으로 판을 벌인 일도 있었다. 설마 천안의 예술인들을 ‘1억5000만원짜리’로 매김하는 것은 아닌지. 돈을 더 들여서라도 예술인들이 할 수 있는 선을 찾아보자. 영 시원찮으면 없애거나 대폭 축소한 형태의 예술제도 가능하다.
‘예산만 확보된다면 정말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는 예술인 협회들. 시행정과 시의회가 혹여 정확한 판단근거 없이 머릿속에서만 재단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들 말이 지킬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기회를 가져보면 해답은 자연스럽게 나올 것. 어떤 식의 예산과 규모가 이들에게 맞는 옷인지. 시민들도 지역의 예술축제를 즐길 수 있는 권한이 어디까지일지가 가늠될 것이다.
<김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