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세. 하늘의 뜻을 안다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아이들 뒷바라지 하고, 생활에 쫓겨 살다 보니 곱던 얼굴에 주름살이 느는 것을 느낀지 오래.
“99년도인가,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죠. 그리고 늦깎이지만 뭔가 배워야겠구나 했습니다. 나에 대한 도전이었죠.”
그로부터 10년, 이젠 ‘풍물굿 신영순’으로 알아주는 이들이 많다. “사물놀이 자체가 신났죠.거기엔 활기를 넣어주는 신명이 있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뭔가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물놀이를 배우는덴 끈기가 필요했다. 몇 번 약해지는 마음을 다듬고 열심으로 임했다. 출중하진 않지만 남들 앞에 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자, 그동안 별러왔던 ‘풍물굿 봉사’를 시작했다.
“2년 전쯤 동일하이빌 풍물놀이 강사로 봉사할 수 있게 됐어요. 놀이문화가 없는 아파트란 점에서 더욱 흥미가 끌렸죠.”
아주 가끔은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제기차기나 술래놀이, 전쟁놀이, 자치기, 구슬치기 등 예전엔 얼마나 많은 놀이문화가 있었던가. 자연을 벗삼아 심신을 즐기고, 건전한 놀이로 화합과 재미를 누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저 학원생활에 찌들리고, 기껏 오락게임 등에 빠져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것.
일주일에 한번 목요일 저녁에 2시간씩 20명 남짓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신씨. 간절한 마음에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틈틈이 아이들 정신교육에도 신경썼다.
“대부분 아이들이 배려라는 것을 몰라요. 경쟁사회에 자신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학습되어 있죠.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에요.”
한번은 아이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마구 벗어놓은 신발들을 옆 빈통에 버렸다. 의아해하는 아이들에게 “버려달라고 한 것 같아 버렸다”고 호통쳤다. 그 뒤로는 신발정리가 제법 반듯해졌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은 그때 뿐임을 깨달았다.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 지속적인 반복교육으로 바로잡아야죠.”
사물놀이를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밝다. 재미도 있거니와, 한곳에 살면서 지나치던 아이들이 형·동생으로 친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문화의 소중함, 놀이문화를 통해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나도 행복할 거예요.”
신씨는 어르신들을 위한 풍물봉사를 비롯해 몇몇 곳을 다니며 보람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