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릉’.
지난 1일 순환관광버스가 2008년 들어 첫 운행하는 날. 바람은 차가와도 햇살은 한줌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안내도우미, 김정희(36·성환읍)씨다. 겨우내 사무실만 지키고 앉았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다시 관광객과 마주한 정희씨의 입은 첫날인데도 참새처럼 재잘재잘. 경력 5년이 어디 갈까.
2003년 8월, 순환관광버스가 운행한 지 2달째쯤. 정희씨는 ‘안내도우미’를 하겠다고 시청문을 밀고 당차게 들어섰다. “당시 천안의 문화·유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쪽을 전공한 적도 없구요. 둘째아이도 4살밖에 안 돼 잠깐 부업이나 하자고 문을 두드렸죠.”
이후 그만 두겠다는 생각도 여러번. 하지만 5년째 그를 쉬임 없이 달려오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 순환관광버스 운행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 견해 때문이었을 거예요. ‘공주시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이를 악물었죠.” 자존심을 건 싸움은 그를 열정적인 투사로 만들었다.
처음, 몹시 낯을 가린 터라 관광객들을 바라만 봐도 벌벌 떨었다. 밥도 넘어가지 않고, 물도 삼키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지만 ‘긴장감’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적응이 안 됐죠. 매일 같은 사람을 만나면 편해졌겠죠. 한데 매번 바뀌는 관광객들의 낯선 눈길이 온통 나에게 쏠리는 걸 느껴요.”
그래도 순환관광버스 운영이 활성화된 공주시와 수원시를 찾아가 배우고, 지역의 관광문화를 익힌 것이 도움이 됐을까. 언제부턴가 제법 여유도 생겼다.
매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생활. 몇 푼 안 되는 급료에 눈물이 핑 돌 때도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 경조사에도 빠질 때가 많았고, 심지어 친정아버지 고희연에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다. “가장 미안한 건 주말을 가족과 보내지 못한다는 거죠. 제 자신의 일에 ‘충성’하지 않았냐는 자긍심마저 없다면 못 버텼을 거예요. 어느 때인가 관광을 마친 50대 아주머니 한 분이 그러더군요. 너무 행복했다고…, 그래서 나도 행복합니다.”
김학수 기자 (pusol01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