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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욕심이 없어져 그런지 참 좋구나”

천안의 대표예술가로 전국에 유명세, 최근 독보적 취묵헌체 준비

등록일 2008년02월1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사람 사는 일도 굴곡이 있고 완급이 있듯 무작위의 글씨를 쓰고 싶다.’

천안이 낳은 예술가, 인영선(62·취묵헌
) 선생은 요즘 독자적인 ‘취묵헌체’를 갖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전국 10대 서예작가 반열에 올라있는 그는, 천안에서도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어느 시에서처럼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의 절대고독의 경지에 범접하고자 하는 정신세계는 이미 사투(死鬪)를 벌인 지 오래다.

한자(서예)와 인연을 가진 것은 3살 때지만, 본격적인 서예의 길로 들어선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 어느날 환경미화를 위해 쓴 서예에 반한 장학사가 서예를 지도해주면서부터다.

그로부터 수십년. 입신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물욕 없이 오직 서예에만 심취한 덕분이다. 또한 평생 한문에만 몸담아 사신 증조부와 조부, 부친의 3대에 걸친 솜씨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때문이기도 하다.

'人而不如鳥(인이불여조) 何日去投林(하일거투림).'

그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문장이다.

"사람은 새와 같지 않아 언제 내 숲을 찾아갈까 하는 내용이야. 새는 날이 지면 제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데 나는 언제 내 숲에 찾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어린 나이에 서(書)의 참맛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저 서예로써 내 집을 지어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지. 끝까지 가봐야 끝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쉬면서 가더라도 끝까지 가볼 일이야” 한다. '무작위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예술혼의 의지가 엿보인다.

필호는 왜 취묵헌(醉墨軒)인가. 30대만 해도 매일 대취한 채 시내를 활보하면서 술값도 글씨로 대신 했다던가. 그래서 어떤 이는 ‘술 취해 글씨 쓰고 대청마루에 뻗은 사람’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취묵헌’이라 한 데는 명리(名利)에 뜻을 두지 않고 부귀(富貴)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묵(墨)에 취해 일생을 자오(自娛)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여하튼 인생을 술과 함께 살아왔으니 이미 취묵헌과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세상에 서예로 두각을 보였으나, 기실 취묵헌 선생은 경희대 국문학을 전공해 문예적인 재능을 겸비했다.

“비록 사군자나 문인화는 배운 바 없지만 난초, 소나무 그밖의 형상화 역시 능하다”는 형 인영철씨의 말처럼 시·서·화 모두에 능한 예술인이다.

가끔 서울을 오가며 후학에 힘쓰지만, ‘이묵서회(以墨書會)’란 서실은 30년 세월을 함께 한 벗이 됐다. 1972년 ROTC장교 제대 후 천안 문화동 구청사에서 재래시장길로 내려오는 길가 건물 3층에 서실을 마련했다. 당시 지방에는 서실이 없던 시절. 천안에서는 서실경영의 효시가 된 셈이다.

글은 유하기를 바라지만 세월은 그의 예술가적 성정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예전 평택 모 면에 대통령 모내기 기념정자를 세울때 현판쓰기를 거절했고, 모 대학장이 남을 통해 작품을 요청했을 때에도 거절했다. '청탁인이 직접 와서 부탁하지 않으니 무례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최근에도 모 방송사의 요청이 왔으나 정확한 출연시간대가 없다는 것이 거슬려 그만 두었다. 까탈스럽다 오해받기도 하겠지만, 때때로 성심이 보여지는 이들에게는 아무 대가 없이 다가가기도 해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갖은 모양으로 살피며 돈독한 관계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빼어난 서예솜씨처럼 인격도 경지에 들어섰는지. 요즘 그의 입에서 “참 좋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감탄조의 이 말은 허례허식을 찾아볼 수 없다.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나오는 무위의 모습, 그 자체다.

바닷가의 모난 자갈이 풍파에 둥그러지듯, 한때 못마땅하다 봤던 세상이 이젠 모두 너그러워졌는지, 발그레한 술기운 속에 한마디 내던져지는 말 "참, 좋다!". 

김학수 기자 (pusol0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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