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심정입니다.”무죄를 기대했던 1심선고에서 ‘벌금 200만원’을 받은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 지난 17일 그가 사는 아파트 소공원 벤치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초췌함이 묻어났다. 천안문화원을 반평생 이끌어 오며 순항만 거듭해오던 그였으니 오죽할까. 요 1년은 그가 보낸 23년보다 더 큰 무게감으로 점철될 것이다. 신임 문화원장과의 불협화음 끝에 원장은 성추행으로, 사무국장은 횡령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따지고 보면 원장과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0일 54주년 기념일조차 처음으로 못챙긴 것이 못내 가슴 아픈지 잠시 침통한 표정을 보인다.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퇴진’에 대한 결단을 번복한다. 지인들조차 ‘문화원과의 인연을 그만 접으라’는 사람과 ‘아직은 물러날 때가 아니다’라는 사람이 갈린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야 할 때인 걸 압니다.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앞뒤 재보게 됩니다.”그가 당장 못떠나는 이유는 서너가지다. 그 죄가 가볍더라도 벌금을 맞았으니 ‘불명예 퇴진’되는 오점을 남기기가 아쉽다. 1심선고 후 내심 ‘이젠 그만두자’고 마음먹었으나 변호인이 항소할 뜻을 강력히 주문했고, 검찰측도 판결에 불만을 두고 항소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2심이 진행중이다. 그가 떠나면 믿고 있는 직원들에게도 면목이 없어진다. 검찰조사에서 수개월간 계좌추적까지 벌였지만 직원 누구에게도 불법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은 것은 떳떳함이 증명되는 것. 그만 두고 싶어서 퇴직한 것이 아닌 만큼 복직 등에도 일말의 기대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내가 그만두면 아무도 이들을 피해자로 보거나 복직에 관심둘 이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다. “그래도 떠날 마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장의 2심 선고 후에 결정하라는 지인들의 만류에 며칠만 더 기다려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다.또하나, 그가 나오면 바로 문화원이 정상화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자기는 언제나 나올 준비가 돼있지만 그건 ‘문화원 정상화’에 도움된다는 전제하에다. 이에 대해서는 일부 이사진들과 많은 고민을 나눈다고 말했다. “문화원장이 직원과 이사, 회원들 상당수를 자기측 사람으로 심어놔 문화원 운영의 의결권을 확보해나가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문화원 정상화의 길이 요원해질 수도 있습니다” 한다. 문화원장이 퇴진했을때 원장측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하는지, 또는 정리할 수는 있는지 애로가 클 거라는 얘기다. 그는 재차 “이제 문화원에 미련은 없습니다. 다만 소용돌이 속에 떠밀리듯 나오는 것이 못내 억울해 어떤 처신이 올바른지 하루하루를 고민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시민에겐 꼭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다. 한편 오는 26일(목)에는 문화원장의 2심선고가 예정돼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되면 장기적 파행에 대한 주위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