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54
김영희씨의 미국생활 20년. 그동안 그가 배운 것은 미국스타일의 봉사였다. “미국은 생활 자체가 봉사입니다. 몸에 배여있어요.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을 맡기든 즐겨 행합니다. 그것이 험한 노동일지라도 말입니다. 한국사람도 그걸 배웠으면 좋겠습니다.”그가 2000년 한국 천안땅을 밟은 후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것도 ‘봉사’였다. 일주일에 두 번 남편과 같이 열람실에서 반납된 책을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2001년에는 새롭게 신설된 ‘장애인 도서배달’ 업무를 맡았다. 4명의 장애인에게 그들이 원하는 책을 수시로 전해주고, 어느 때는 친구처럼 또 어느 때는 상담자로 어울렸다. 장애인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반겼다. 중앙도서관이나 배달봉사자가 갖다주는 책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인터넷으로 신간서적이나 원하는 서적을 찾아 요구했다. 보통 3?4권을 전해주는데 장애인이 다 본 후 연락을 해오면 다시 방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 달에 한 두번 방문하게 되는데 어떤 장애인은 3개월이 넘도록 연락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한 명만 남았어요. 한 분은 직장을 갖게 됐고, 한 분은 필요없다며 원하지 않았죠. 지금 남아있는 분은 누구보다 많은 책을 봤을 거예요. 주로 소설이나 수필, 시를 즐겨 읽으시는 여성분이죠.”이같은 일을 하다보니 장애인에 대한 시대변화를 읽게 됐다. 당시만 해도 집에만 있는 장애인이 많았지만, 점차 밖으로 나다니는 장애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빛회 등을 통해 이동차량봉사를 이용하기도 하고, 직장을 얻어 사회활동도 하는 등 예전보다 상당히 활발해졌다는 점이 고무적임을 밝힌다. 그는 한국에 와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봉사하는 사람들조차 봉사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교육이 전혀 없어요. 봉사를 하기 전에 철저한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거든요. 봉사점수를 따기 위한다든가 하는 다른 목적을 갖고는 참봉사를 할 수 없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