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묻힌 행려사망자들의 묘.
오곡백과로 상차리고 조상덕 기리는 추석, 무연고묘는 쓸쓸함만 더해추석이 다가옴에 따라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사람들의 소비성향부터 달라졌다. 기본적인 지출이 20% 가량 줄었다. 이 때문에 동네슈퍼는 울상이다. 예년과 달리 대목장사에 대한 기대도 없다. 대량구매는 대형할인마트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된 때문이다. 이미 빠른 곳은 선물세트가 진열대를 차지하고, 영화관 등은 명절대목을 노리며 준비에 들어갔다. 주말차량도 늘었다. 선산에 벌초하러 나서는 사람들을 흔히 본다. 도심지를 벗어나면 길가에 대있는 차량이 쉽게 눈에 띈다. 천안 시립묘지의 무연고묘도 12일 새마을지회 회원들이 달려들어 단장을 끝냈다. 읍·면의 27개 공동묘지도 각 봉사단체들이 벌초를 위해 팔걷고 나섰다. 무연고묘는 대부분 삶이 고단했던 사람들로, 죽어서도 홀대받는 아픔이 배어있다. 무연고묘는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다. 행려사망자는 연고가 없거나 찾지 못해 무연고묘가 된다. 이를 처리하는 곳은 천안시 사회복지과 복지행정팀. 아직 사회보장제도가 미흡하지만 죽어서나마 ‘사회복지’ 혜택이 이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구룡동 구룡리 공동묘지 한 켠에는 행려사망자를 비롯한 무연고묘 120여 기가 안장돼 있다. 오동균 복지행정팀장은 가족이 버린 묘도 있다고 한다. 혈육의 정까지 팽개친 데에는 살아생전 ‘웬수’같은 힘겨움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시의 배려에도 무연고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1만7000평의 구룡동 공동묘지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몸 하나 누일만한 공간 뿐. 그 흔한 비석 하나 없다. 그래도 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무팻말에 숫자만 나열돼 있을 뿐이다. ‘2006.8.22’라고 적힌 것을 보니 사망한지 한달밖에 안된 묘다. 봉분형태가 둥글지 못하고, 관이 묻힌 흔적대로 흙을 쌓아올렸을 뿐, 잔디뗏장도 없다. 비오면 오는 대로 맞고, 빗물로 골이 지면 봉분의 흙도 떠밀려 가는 신세. 살아서나 죽어서나 대접받기는 틀렸다. 이들의 처량한 신세는 땅 한평에만 있지 않았다. 남쪽을 등지고 있어 햇볕 한조각 들지 않는 자리에 터를 잡았다. 어림잡아 몸을 누인 형세가 북북동. 남쪽을 지향하는 일반 형세와는 정반대 모양이다. 흙으로 다져진 봉분은 어느 풀씨가 날아와 자리잡느냐에 따라 터주가 된다. 그러다 보니 가장 억세고 질긴 풀들이 봉분을 점령하고, 사람 크기만큼 자라 덤불을 이뤘다. 어차피 맨 흙으로 있기 보다는 억세풀을 친구삼는 것이 보기가 낫다. 무연고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오동균 팀장도 이들의 처지를 동정하며 “내년부터는 명절때 합동분향이라도 지낼 수 있도록 강구해봐야겠다”고 말한다. 남들은 후손 잘 둔 덕에 금칠하듯 돌보는데, 이들은 명절때라도 막걸리 한잔, 산적 한조각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러게 평소에 성실히 살았어야지, 제 인생 포기해서 뭐 좋을 게 있을겐가” 무연고묘를 지나다 푸념처럼 한마디 내뱉고 가는 백발 성성한 노인네의 말이 귓전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