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37·도예가)
성정동 성정초등학교 앞 공방. ‘토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토장은 토기장이의 준말이다. 언제부터 토장이 생겼는지 있는 듯 없는 듯 주변사람들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안에는 각종 도예작품이 가득하다. 특유의 흙냄새와 물레 사이로 투박함이 묻어나는 막사발들이 보인다. 어떤 것은 술병처럼 생겼지만 주둥이가 사람얼굴이 달라붙어 있다. 가슴이 하트모양으로 구멍이 나있는 것은 꽃병이란다.
평범하게 보이는 그릇에서부터 요상한 생김새를 가진 것들까지 다양하고, 크기도 제각각. 이 모두가 토장주인인 김재민(37·도예가)씨가 만든 작품이다.
이야길 나누다 보니 재민씨도 자신이 제일 좋아한다는 ‘막사발’을 닮아있었다. 구수하고, 토속적이고, 때묻지 않은….
재민씨가 도심 속에 자리를 튼 것은 ‘천안시장 보다도 막강한’ 토기장이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 한 발을 내디뎠다. 많은 아이들이 토기장이를 통해 인격을 쌓고, 꿈을 키우며 착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 또한 현대문명에 치여 온갖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어른에게는 위안거리가 되고, 의욕을 북돋아주는 ‘도심속 토기장이’가 되는 것.
자신이 배운 도예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재민씨에게, 이같은 꿈은 단순 자리로의 천안시장보다는 훨씬 위대하고 값진 일일 것이다.
재민씨가 도자기와 인연이 된 것은 13년 전. 대학에서 산림을 전공했지만 그 말마따나 “목에 풀칠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우연찮게 눈에 띈 게 도자기였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세상살이로 공부했지만, 이번엔 작심하고 도자기에 미쳤다.
“이게 내 적성인 게죠. 처음 도자기를 접하고 그 마력에 빨려 들어갔어요. 누군가 그랬죠. 도자기를 빚고 불을 땔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떼어내는 고통이 애착으로 서린다고…. 정말 최선을 다해 배웠던 것 같아요.”
천안시 공예품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고, 공예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끼리 ‘천안현대공예가회’라는 명칭을 붙이고 살갑게 왕래했다. 도예업도 경제흐름에 일정한 리듬을 탔다. 2000년 쌍용동에 조그맣게 공방을 시작했을 때는 공방인기가 치솟으며 상시수강생만 해도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 회비로 전기세다 임대금이다 충당하고, 개인 작품활동에 열심을 내었다. 하지만 IMF로 인한 경기불황은 하나 둘 정든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했고, 급기야 그도 도심 변방인 유량동 한 귀퉁이로 물러나야 했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던 재민씨. 어느 날 ‘젊었을 때 고생하고 도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욕과 열정이 다시 그를 성정동 도심속으로 불렀다.
“예전에는 한달에 한번 작품들을 리어카에 싣고 거리에 나서면 몇십만원씩 팔고 왔어요. 그런데 어느땐가부터 10분의 1로 줄었어요. 지금은 고정수강생이라곤 어른 두명 뿐이고, 1일교실이나 출강 등 단발교육을 통해 겨우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죠. 하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많은 이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한다.
모든 도예가들이 그러하듯, 자신도 모든 도자기 공정을 거치고, 마지막 불가마에서 꺼내기 전날 밤은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잠을 못이룬다고. 그런 초조함 속에서 막상 완성된 도자기를 꺼냈을 때 자신이 기대했던, 유독 애정을 담은 도자기가 제 모습을 갖고 나왔을 때 말로 형용못할 행복이 물결친단다.
물론 정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낙심으로 변하고 말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빛깔 좋게 나올땐 그나마 위안받게 된다고.
지난 7일 공방에는 어른 1명과 1일교실 체험에 나선 두 가족이 재민씨를 따라 열심히 도자기를 빚고 있었다. 아이들은 교육과제로 던져준 기마병을 만들며 찰흙을 조물락 조물락.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모습속에, 이를 쳐다보는 부모들도 즐거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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