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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최초만세운동이 ‘3월3일’이라고?

‘3월3일’이라고?

등록일 2006년03월1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천안북중 신상구 교사, 천안최초만세운동 3월4일 주장. 사진은 중앙시장 전경. 이기영 선생 회고적 수필에 언급… 착오 가능성 높아 연구검토 필요천안에 최초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때는 언제일까. 현재까지는 3월14일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최근 ‘3월3일’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고 여러 모순점을 안고있어 깊은 확인과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먼저 3월3일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이는 천안북중학교 역사선생으로 있는 신상구(56)씨다. 그는 우연히 월북한 민촌 이기영 선생이 지난 58년 중앙위 기관지인 조선문학(월간지) 3월호에 ‘내가 겪은 3?1운동’이라는 수필형식의 글에서 찾아냈다고 밝혔다. 글에는 당시 3월3일 장날 천안 중앙시장에서 만세가 메아리쳤고, 그 광경이 장관을 이뤘다는 내용의 글을 담고 있다. 민촌이 직접 보고 경험한 3·1운동이니만큼 진실성 자체를 의심하기가 쉽지 않다. 신 선생은 지난 가을 기자에게 “천안에 최초 독립만세운동 기록이 바뀔 수 있다”며 “좀 더 구체적인 근거를 파악해 올해 3?1절이 되는 때를 기해 대내외에 밝히겠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가 밝힌 주장은 오직 이기영 선생의 작품에만 의존하고 있어 별도의 사실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실제로 천안 향토사가인 임명순씨는 “글 속에 전개되는 여러 사실정황으로 보아 당시 3월29일(음력 2월28일)에 있던 중앙시장 만세운동과 시간적 착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렇게 주장하기는 먼저 3월3일 장날에 만세운동이 있었다고 한 부분. 현재 3일과 8일장이지만 당시는 음력장날을 썼기 때문에 장날이 될 수 없다고 문제제기했다. 양력 3일장을 쓴 것은 1938년 이후부터다. 통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주동이 됐다는 것도 당시 천안-서울간 기차가 하루에 몇 번 없었고 3시간씩 걸렸으며 제때 기차가 없어 통학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됐다고 덧붙였다. 민촌이 당시 기억을 회상하기에는 39년의 시차가 생긴다. 이를 증명하듯 글에는 공주의 갑부 김갑순씨가 대전에서 행했던 것을 천안과 혼동하고, 1918년 경남철도를 봤다는 부분도 1921년 설립돼 철도를 가설한 것으로 돼있는 점 등을 꼬집었다. 임씨는 “정확한 날짜와 사건을 고증한 것이 아닌 수필형식이므로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써 단정짓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은 이들의 천안향토사에 대한 관심에 격려를 보내며 “천안 최초 만세운동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과제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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