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 오른쪽 팔과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장애5급. 가끔씩 찾아오는 정신분열증세. 이것이 57년을 살아온 정현모씨의 이력이다. 정씨의 인생설계가 처음부터 망가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83년 이전까지만 해도 ‘행복’이 무언지를 아는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천안시청 환경미화원이라는 어엿한 직장이 있고, 안락한 가정과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자로도 손색이 없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명언을 가슴판에 새기고,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75년도부터 수만자루의 싸리비를 만들어 무료로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250여 개 고장난 우산이 어머니와 그의 손을 거쳐 고쳐진 후 시청 한켠에 민원인들을 위해 세워두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느닷없이 인생의 먹구름이 몰려왔다.“내 인생에 83년만 없었다면….”악몽은 83년 7월3일 그렇게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해 근무하다가 팔이 와이어에 감겨 절단되기 직전 상태까지 갔다. “그건 어디까지나 산업재해지 않습니까. 근데 시가 취한 행동이 뭔지 아십니까. 치료비와 퇴직금도 없이 쫓아낸 거예요.”시에 줄기차게 치료비를 요구해도 꿈쩍도 안 했다. 2년이 지난 85년 겨우 돈을 마련해 수술했지만 이미 팔을 제대로 못쓰는 장애자로 전락했다. 너무 억울해 대통령, 내무부장관, 충남도지사, 천안시장 등에 속사정을 밝혔지만 시가 취한 것은 오히려 ‘사직’이었다. “어느날 시 직원이 찾아와 치료비를 받고 싶으면 서명하라는 말에 했죠. 근데 교묘하게 내가 잘못한 양 내용을 삽입하고, 사직서에 서명한 것으로 날조한 거예요. 사람 미치고 팔짝 뛸 일 아닙니까.”이후로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한때 살기 위해 고물도 주워봤지만 오른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는 돈벌이를 할 수 없었다.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기자신’이었다. 억울한 누명까지 씌워 인생을 망친 ‘시청 그네들’에게 꼭 잘못을 실토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분열증세를 얻기까지 한 것. “지금까지 150번 넘게 시청을 찾아갔고, 시장 멱살까지 잡기도 했어요. 이제는 옛날 일이니 서류가 없다, 뭐가 없다며 잡아떼는데 사람 돌아요. 가만 있다가도 머리가 멍해지면 택시를 잡고 시장 관사나 시청 앞에 나도 모르게 가 있는 거예요.” 그가 보여주는 몇몇 자료들은 당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직서에는 이름도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정현모가 아닌, 전현모로 적혀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