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면 장산리에 위치한 담헌 홍대용 생가지가 시민들의 관심에 따라 복원될 전망이다.
역사적 인물은 종종 생가와 맥을 같이 한다. 생가는 그의 선천적인 능력을 담아낸 곳으로 인식되며 높은 가치성을 지닌다.
천안이 애국충절의 고장으로 불리는 것도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석오 이동녕, 철기 이범석 등의 생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보다 앞서 수신 장산리에는 담헌 홍대용(1713∼1783)의 생가지가 있는데, 그는 18세기 후반 실학의 대표적 학자로 이곳에 묻혀 일생을 보내기도 했다.
아직은 잡풀이 우거진 빈 터와, 평범한 홍대용 묘소만이 자리하고 있으나 생가지 복원계획과 함께 이 일대가 머지않아 새롭게 달라질 전망. 한번쯤 가족나들이로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학자천안 수신 상록리조트 정문 주차장에서 낮은 구릉을 북쪽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병천천 제방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도로를 약 1.1㎞ 따라가면 장산리 장명마을에 이른다.
홍대용 생가지가 있는 장명마을의 도로는 열악한 상태며, 현재는 진입로조차 구분하기 힘들다. 마을은 서쪽으로 해발 1백14m의 뒷산이 자리잡고, 동쪽은 2백47m의 바라박산이 마주하고 있는 형상이다. 70년대까지 승천천이 집중호우로 범람하면 생가지까지 물이 범람했다고 한다.
입간판을 따라 생가지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낭패를 면하기 어렵다. 입구에 다다라서야 ‘홍대용선생 생가지’라는 입간판이 세워있고, 옆에는 홍대용 선생이 지은 싯귀가 눈에 띈다.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고
재주스럽지 못하니 헛명예 있을소냐.
수시로 좋은 친구 찾아오면
아름다운 산나물 술안주가 일미라오.
높은 난간에서 거문고 타노니
곡조속에 슬픈감회 그 뉘가 알겠는가’
범인의 눈으로도 선생의 높은 절개와 고고한 기품이 느껴지는 글귀는 특히 입신양명의 욕심이 한 터럭도 엿보이지 않는 자유함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그의 벗 박지원이 홍대용을 일컬어 “통달하고 민첩하며, 겸손하고 우아하며, 식견이 원대하고 이해가 정밀했으며, 더욱이 율력에 뛰어났다”고 평한 것을 보면 그 인품과 능력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비단 박지원의 평가만이 아니라 당시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고 홍대용이 역대 천문의기의 제도를 탐구하고 당시 전래된 서양의 천문의기를 참조해 각종 천문의기를 제작, 농수각이라는 자신의 사설 천문대를 설치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음악과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과학사상가로도 대단한 자질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국가운영의 모델을 제시한 ‘임하경륜’과 2천6백쪽에 이르는 ‘을병연행록’을 지어 국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서민시집인 ‘대동풍요’도 편찬했다.
10월 중순, 시굴조사 추진천안시는 지난 4월 충청남도역사문화원(원장 정덕기)에 의뢰한 ‘담헌 홍대용 유적복원을 위한 기초연구’ 용역보고서를 얻었다.
시의회에서 이완희(수신면) 의원이 2차례의 시정질문을 통해 관심도 높여놓은 상황. 게다가 홍대용 선생과 관련해 “고장을 대표할 만한 뛰어난 인물”이라는 문화예술 관계자들의 평가가 더욱 생가지 복원사업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시 문화관광담당관실 이종택씨는 “10월 중순경 시굴조사가 시작되면 11월 초순에 결과에 따라 복원계획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체계적인 복원을 위해 발굴작업 등에 신중히 다가가고 있다. 자칫 잘못 복원했을 경우 미치는 여파가 크다는 전문가 의견에 공감, 향후 7년을 내다보고 추진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여기에는 수십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가지 옆에 사는 한 어르신네는 이 말을 듣고 “내가 그 때까지 살아있을까 몰라” 한다.
“내 나이가 이제 80에 가까운데, 생가지 복원을 내 눈으로 보고 죽겠어?”
생가지 복원은 조용한 장명마을에 큰 전환기가 될 예정이다.
수십억원이 투자된 관광지로 개발되면 농사만으로 살아왔던 마을에 외지인들이 몰려들 것은 뻔한 일. 그에 따라 생활터전도 크게 달라질 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 변화도 없는 당장은 ‘설마 그럴까’ 하며 반신반의하는 정도. 수신면에는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것이 4개 있다.
장산리에 홍대용 생가지(문화재자료 349호)를 비롯해 홍대용 묘소(도지정 기념물 101호), 석불입상(문화재자료 356호)이 있으며 도보로 5분 거리의 속창리에는 한명회 신도비(문화재자료 332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