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서재에서 대담중에 환하게 웃는 임종국 선생.
민족문제 연구소측 ‘천안삼거리 설치’ 주장일제치하 친일문제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1929∼1989) 선생의 기념조형물을 세우자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돼 주목된다. 한국 민족문제연구소는 임종국 선생 동상 설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설치장소가 천안이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시와 협의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천안시는 독립기념관의 광복의 동산과 태조산 추모의 공원을 추천하고 있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전통과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천안 삼거리공원을 적합지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 매년 임 선생이 묻힌 천안공원에서 추모제를 지내는 천안 민주노동당의 이용길 위원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독도영유권 문제 등 일본의 만행이 자행되는 마당에 임종국 선생의 기념조형물 건립은 독립의지가 드높은 천안에 좋은 상징적 의미를 던져줄 것”이라며 설치장소에 대한 적극적 배려를 원했다. 한편 시는 곤란한 입장을 거듭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삼거리공원에 개별적인 기념물을 두지 않기로 함에 따라 임종국 선생의 기념물도 둘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친일진상 규명 논란의 찬반이 다양한 상황에서 자칫 한쪽 의사를 들었을 때 올 수 있는 반발감에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한편 임 선생은 82년경 건강상(기관지 확장증)의 이유로 천안에 내려와 삼용동 샛골 산기슭에 6년간 머물렀다. 밤나무와 채소 등을 키우며 한편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위한 편찬사업 연구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러다 여러 사정으로 한방병원 인근 양옥집으로 내려와 2년여를 채 못살고 임종했다. 민주노동당 충남지부(위원장 이용길)는임 선생의 친일 저항정신을 높게 사 매년 그가 묻혀있는 천안공원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임종국 선생 일대기정치외교를 전공했지만 문학에 뜻을 두고 59년 문학예술지에 시 부문 <비(碑)>를 발표해 시인으로 등단해 시와 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지난 65년 한·일회담이 굴욕적이라고 판단한 임 선생은 66년 친일문학론을 발간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으며 이후 일본침략과 친일파, 밤의 일제침략사 등 친일문제를 중심으로 일생을 보냈다. 그는 문단의 거목들이 천황과 일제를 위해 바친 매국매족의 증거물을 꺼내놓고, 자료발굴과 조사, 연구를 통해 일제침략, 친일파, 친일논설선집 등 14권의 저서에다 수백편의 논문을 남겨놓았다. 그는 친일파들이 한국의 권력과 여론을 움켜쥔 상황에서 한국민의 자의식을 일깨우는데 이바지했다. 또한 그를 모태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태동되며, 친일 관련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2천년을 떠돈 유대민족도 전통을 상실하진 않았다. 우리는 불과 35년 만에 이 지경까지 타락했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라는 임 선생의 유고 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비롯된 친일의 뒤틀린 현대사를 올곧게 조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더욱 빛난다. 하지만 친일진상규명의 단초를 제공한 임종국 선생에 대해 오늘날 천안지역의 평가는 다양한 시각에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