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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사태 아직도 제자리

등록일 2016년08월2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업주들은 근로기준법을 외면합니다.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해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를 왔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치며 1970년 11월13일 분신자살한 당시 22세의 청년 전태일이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22살의 한 젊은 노동자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육신을 불사르며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청년 전태일은 당시 열악한 근로환경을 폭로하며 노동청과 근로감독관에게 감독해 줄 것을 정당하게 요구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4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초고속 성장을 통해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지위를 확보한 2016년 대한민국은 46년 전 청년 전태일이 그토록 바라던 세상이 왔을까.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사건은 2011년 5월 발생했다.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경영진의 사주로 노조파괴 전문용병들이 대거 동원돼 폭력을 행사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노조를 파괴하려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2016년 3월17일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가 자살했다. 한광호씨 유족들은 5개월이 넘도록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과 조합원들은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의 사과를 요구하며 5개월이 넘도록 거리에서 농성 중이다. 심지어 지난 8월17일부터 동료이자 유족인 한광호 조합원의 형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2016년 8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동안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아왔습니다.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는 고용노동부와 경찰, 검찰의 조직적 공모 내지 방조 속에 진행돼 왔습니다. 그리고 그 탄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법부마저 정의를 바로세우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은 마지막 희망을 잃게 될 것입니다. 또 절망은 더 큰 불행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2012년 국회 청문회 등을 거치며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 분노했다. 그러나 재판은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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