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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지식인 홍난파를 단죄하다

등록일 2015년09월2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아산지회는 지난 20일 독립기념관 입구에 있는 홍난파 기념비 앞에 홍난파 단죄문을 설치했다.

천안시는 1987년 독립기념관 ‘광복의 동산’에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나무와 비석을 세웠다. 광복의 동산은 독립기념관 진입로 좌측에 꾸며진 숲이다.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한용운 선생 등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나무와 비석이 들어서 있다.

홍난파를 기리는 나무와 비도 서 있다. 홍난파 비에는 ‘홍난파 선생과 감나무’ 제목 아래 “‘봉선화’, ‘고향의 봄’을 비롯한 수많은 겨레의 노래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주면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준 작곡가 난파 홍영후(홍난파 본명, 창씨명 모리카와 준)로 선생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 옛 동산에 자라던 감나무, 상수리나무 가지를 따다가 여기 심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린다”고 썼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9년 일제 강점기에 친일·반민족 행위를 자행한 친일파 목록을 정리해 발표했다. 여기에는 홍난파가 포함됐다. 그러나 천안시와 독립기념관 어디에서도 홍난파 비를 철거하지 않았다. 

그동안 홍난파가 얼마나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했는지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친일행적을 살펴봤다.

1937년 미국 유학 중 흥사단에 가입한 일로 검거되자 경성지방법원에 ‘사상전향에 관한 논문’ 제출했다. 이 논문에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금후는 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온건한 사상과 정당한 시대관찰로써 국가에 충성을 꾀하며, 민중에 대해서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같은 해 친일문예단체 조선문예회 위원으로도 참여해 활동했다. 1938년에는 사상전향자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하면서 “조선 민중의 행복은 내선(內鮮) 두 민족을 하나로 하는 대일본 신민이 돼 신동아건설에 매진함에 있다”는 ‘전향성명’을 발표했다.

이광수가 작사한 ‘희망의 아침’ 가사에는 ‘천황폐하의 분부 받들어 팔굉일우로 대아세아의 대공영권을 건설하여 일장기 날리면서 자자손손 만대의 복 누릴 국토…’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밖에도 그는 광복될 때까지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수많은 일제찬양 흔적을 남겼다.

홍난파는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참으로 나쁜 지식인이었다.
오늘 그에 대한 단죄는 정당한 것이다.

 

편집국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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