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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위에 꽃무늬 놓다

등록일 2024년03월1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30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니 여유시간이 많아졌다. 

마침 자주 애용하는 자원봉사 사이트에 플로깅 프로그램이 올라와 바로 클릭하였다. 주말 청소년수련관에서 추진하는 가족 플로깅 프로그램이었다. 플로깅은 스웨덴어의 ‘줍다’를 의미하는 ‘plocka upp’과 영어 ‘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는 뜻이다. 친환경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MZ세대 위주로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주차하고 플로깅 자원봉사 집합지로 이동하는 중 등 뒤에서, “엄마는 내가 지켜줄게” 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열서너살 되어 보이는 어린 애가 한 여인의 팔짱을 끼고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로 짐작되는 여인은 빙긋이 웃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딸내미가 옆을 지켜주어 든든하시겠습니다.”라며 부러워했다.
  
이번 플로깅은 태조산 공원에서 진행되었다. 주최 측의 봉사 관련 설명을 듣고 모두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구역을 정하여 흩어졌다. 꽃샘추위로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화사한 봄 햇살에 가슴을 활짝 펼 수 있었다.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휘늘어진 나뭇가지는 초록빛 새순을 내밀며 봄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2년 전 산자락에 새로 낸 그 산책길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시설이다.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무슨 쓰레기가 있을까 싶었다. 눈을 크게 뜨고 한참 살피다가 길 옆 낙엽 사이에서 흰 휴지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집고 보니 반려견의 배설물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공원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쓰레기봉투가 차기 시작했다. 나는 출발 전, 페트병이나 캔이 많이 버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짐작과는 달리 쓰레기의 반 이상이 반려동물 배설물이었다. 
  
효도한다고 고향에 계신 친정엄마를 모셔 온 적이 있다. 새벽잠이 없는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셨다. 어느 날 아침, 으악 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나 보니 엄마가 문 앞 복도에 털썩 주저앉아 계셨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위층 반려견이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목줄을 안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모양이었다. 나중에 견주가 찾아와 사과했지만, 그 일로 인해 아무리 예쁘고 귀여운 반려동물을 봐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 
  
쓰레기 줍기가 끝나고 집결지로 향하던 중 사잇길에서 아침에 보았던 모녀를 다시 만났다. “힘들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아니요, 근데 개똥이 너무 많아요. 저는 우리 애몽이 데리고 산책할 때 목줄을 끼고 쓰레기봉투도 들고 다녀요.” 역시 자신감 넘치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같은 생각을 하는 그와 우리라는 동질감까지 느껴져 나는 엄지척을 해주었다. 정말 멋있어 보였다. 비록 어린이지만 믿음직스러웠다. 반려견의 배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로 내 마음속 맺혔던 매듭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추운 날씨에 봉사한 참가자들을 위해 주최 측은 30분간 플루트 연주회를 열어주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플루트 감미로운 선율과 앙상블을 이루면서 내 마음속의 묵은 찌꺼기까지 산 너머로 쓸어 갔다. 그뿐만 아니라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뿌듯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운동량이 제법 많았는지 몸도 가뿐했다. 비단 위에 꽃무늬 놓았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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