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도 많다.
언젠가 나는 TV프로를 보면서 배꼽이 빠져라 웃은 적이 있다. 출연자들이 돌아가며 자신이 겪었거나 들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프로였다.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심야시간에 영국 프리미어 프로축구를 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얘기를 모두에게 들려줬다.
영국 프리미어에 소속된 프로축구 클럽 중에 ‘첼시’라는 팀이 있다. 지금은 은퇴하고 없지만 첼시를 명문구단으로 이끈 주역을 꼽으라면 우선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를 떠올릴 만큼 졸라는 대단한 선수였다. 168cm의 단신이었지만 그의 빠른 돌파와 간결한 패스는 마라도나에 견줄 만큼 가히 일품이었다.
그가 첼시에서 현역으로 뛰던 시절, 한국의 아나운서가 게임을 중계하면서 날리는 멘트가 이랬단다.
“졸라 공을 잡았습니다.”
“졸라 뜁니다.”
“졸라 슛!”
“졸라 아깝습니다. 살짝 빗나가는군요.”
나는 개인적으로 졸라가 한국 프로축구팀에서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의 뛰어난 기량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설가의 멘트를 들으며 배가 터져라 웃을 수도 있을 테니까. 축구도 관람하고 시름도 잊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들라면 단연 나는 졸라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졸라만큼은 아니더라도 수면내시경 역시 이름으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음을 나는 자주 목격한다.
‘수면내시경’이란 이름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 채 자면서 받을 수 있는 검사이겠거니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수면이라더니, 이게 뭐야. 나 아직 잠 안 들었다구, 의사양반!”
“아파 죽겠다구. 잠들면 검사를 해야 할 거 아냐!”
“멀쩡하기만 한데, 수면은 무슨. 수면내시경에 든 비용은 돌려달라구!”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병원을 비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 보건소나 도청에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이들도 간혹 있다. 축구선수 졸라로 인해 박장대소하는 나는 수면내시경 때문에 ‘졸라’ 곤혹을 치르곤 한다.
수면내시경검사는 말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진 상태에서 받는 검사가 결코 아니다. 수면내시경검사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제로는 미다졸람(Midazolam)과 프로포폴(Propofol)이 있는데, 미다졸람이 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프로포폴 보다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축구선수 졸라에 푹 빠진 나는 간혹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릴 때 ‘미다졸람’ 대신 ‘미다졸라’라고 발음하기도 하는 것인데, 나와 같은 실수는 범하지 않길.
미다졸람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진정, 불안해소, 최면효과를 유도하는 약제다. 심혈관계와 호흡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약제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프로포폴은 필요 이상으로 호흡을 억제시킬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투약 후 빨리 깨어난다는 장점이 있어 직장인이나 시간에 쫓기는 이들에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프로포폴 역시 의료진이 충분히 주의만 기울인다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제다.
마취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다졸람이 들어간 주사를 맞았다 할지라도 환자는 내시경검사를 받는 동안 통증이나 불편감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증을 없애겠다고 주사약의 용량을 마구 늘릴 수는 없다. 아무리 안전한 약제라도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잘 때와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시경검사가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지만, 그럴 경우 검사가 용이하지 않다. 수면내시경검사는 의사와 환자가 긴밀히 공조할 때 보다 수월히 받을 수 있는 검사다. 바로 이와 같은 효과를 이끌어내기에 적격인 약제가 미다졸람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다졸람 주사를 맞은 이는 검사가 이루어지는 내내 의사와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집주소를 알려줄 수도 있고 왼쪽으로 돌아누우라고 하면 주저 없이 왼쪽으로 돌아누울 수도 있다. 하지만 깨어나면 환자는 그간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사를 받는 중에 고통스러웠더라도 깨어나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다졸람을 맞은 이들 중에는 모든 걸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얼마든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 사람이나 평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서 미다졸람의 효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생을 들여다보면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만 있는 게 아니다.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는 궂은 날도 있다. 삶을 들여다보면 미소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기억들 또한 널렸다. 아프고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갈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 때 미다졸람 같은 약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네 삶에 있어서 이런 효능을 가진 약제가 존재할 수 없음을 나는 잘 안다. 약간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라 여겨진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특효약이 고통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혹여 고통이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그가 성숙한 인간일 가능성은 희박하리라 생각한다. 고통을 겪어 보지 못한 이가 다른 이의 고통이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인데, 곁에 있는 이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면 그런 삶을 사는 이야말로 더없이 불쌍하고 초라한 게 아닐는지.
저마다 살다 가는 각자의 인생여정은 한 편의 웅장한 드라마이자 이야기라고들 한다. 드라마와 스토리에서 고통, 눈물, 갈등, 어둠 같은 양념을 뺀다면 그건 이미 드라마라고 할 수도 없지 싶다. 밋밋하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한, 그래서 드라마 같지도 않을 거다.
수면내시경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수면이 안됐네 뭐네 하며 불만을 터뜨리지 마시길. 혹여 그런 이가 있다면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며 괜한 시비를 거는 이라 여길 테니.
그나저나 이토록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라면, 내시경학회니 뭐니 하는 곳에서 자진해서 수면내시경이라는 이름을 정정해야 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