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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 선생

이륭양행 설립,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를 연결하는 전진기지 역할

등록일 2015년04월0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과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조지 루이스 쇼 선생을 2015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4월 한 달간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에서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쇼 선생은 1880년 1월25일 중국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의 파고다 아일랜드(Pagoda Island)에서 아버지인 영국 아일랜드계 사무엘 루이스 쇼와 어머니 일본인 엘렌 오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경 한국의 금광에서 회계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된 그는 1907년 중국 안동현(현재 단동시) 영국 조계에 위치한 단동시(丹東市) 원보구(元寶區) 흥륭가(興隆街) 25호에 무역회사 겸 선박대리점인 이륭양행(怡隆洋行)을 설립했다.

선생이 설립한 이륭양행은 김 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와 중국 이동을 돕기 위해 회사 선박 계림호를 제공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보호 지원했다. 특히 1919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내와 연락 추진을 위해 쇼의 지원으로 안동 이륭양행 건물 2층에 교통지부 교통국(1919년 10월 17일 임시안동교통사무국으로 개칭)을 설치했다.

쇼 선생은 이륭양행이 일본 경찰의 치외법권 지역임을 적극 활용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만주지역 독립운동 단체를 연결하는 안전통로와 국내 전진기지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20년 선생은 한국독립운동 지원 사실이 드러나 일제에 의해 내란죄로 체포 구속돼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석방 이후에도 선생은 정의를 위해 한국인의 독립운동을 적극 원조하겠다고 천명했다.

1921년 1월 쇼 선생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금색공로장을 받았으며, 이승만, 안창호 등과 함께 안동교통사무국의 재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1921년 5월 김문규를 이륭양행 직원으로 채용해 안동교통사무국을 운영했으나 1922년 8월 김문규가 체포 되면서 안동교통사무국이 위축됐다. 1923년에는 상해에서 여운형·김구 등에게 독립운동을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했으며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 노력했다. 1931년 만주침략 이후에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해 온 쇼 선생에 대해 일제의 탄압이 더욱 거세지자 1938년 이륭양행을 복주(福州)로 이전했지만 반일활동과 한국독립운동 지원은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1963년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정리/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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