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신상을 쫓아 여러 나라를 헤맨 사람이 있다.
십이지신상 소문을 듣고 일본을 비롯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을 찾아 떠난 그에게 모두들 미쳤다고 혀를 내둘렀다. 5년여의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고 이제 집 앞에 거대한 십이지신상을 갖게 된 그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솔솔찮음을 보면서 만족한 웃음을 보인다.
천안시 성환읍 남서울대 뒤편 아담한 미륵사에 살고 있는 홍수영(60)씨는 아버지대부터 살아온 터전을 지키고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절도 겪은 그이기에 남을 위한 봉사에도 남달랐다. 12년된 고물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어려운 이웃소식을 접하게 되면 다짜고짜 집안의 돈이든 물건이든 퍼나르는 통에 안사람의 ‘가계부’는 항상 구멍 투성이다.
그런 그가 십이지신상에 본격적으로 미친(?) 것은 7년 전인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부터 사람을 파악하는데 ‘띠(십이지)’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주나 관상, 수상학, 족상, 작명, 궁합에 이르기까지 항상 띠를 물어요. 띠는 국내뿐만 아니라 불교 영향권에 있는 나라 사람들과의 인사 속에도 나타나죠.”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그토록 중요한 띠임에도 사람들은 사용만 했지 대접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띠를 부려만 먹더군요. 십이지에 대한 말들은 엄청 하면서도 막상 띠에 대한 조각상 하나 보기가 어려웠죠. 아! 이럴 게 아니다. 내 생전에 십이지 형체를 만들어 존경의 상징물로 만들어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홍씨는 그때부터 십이지 형체를 찾아나섰다. 수소문 끝에 4개국을 찾아 헤맸지만 겨우 사람 크기보다도 작은 단순 조각상에 실망만 컸다. 국내에서는 경주의 김유신 묘 둘레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 크기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96년 국내에서 꽤 실력을 가진 석조각가 김진덕씨를 소개받고 함께 십이지신상 구상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끝에 화강석으로 된 3m 높이의 십이지신상을 집 앞에 세워둘 수 있었다. 십이지신상은 사람형체를 따랐으며 각 지신마다 그가 부여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예로 소는 낫과 볏단을 들고 있고 토끼는 피리, 뱀은 목도리, 양은 부채 등을 갖고 있는데 홍씨의 해석이 재밌다.
십이지신상을 세워놓은 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연예인 최주봉과 김성녀도 자신의 띠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인접한 남서울대 학생들도 이곳에 찾아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인다.
“방문객들이 자신의 띠 앞에 동전을 올려놓은 것만 해도 다섯됫박은 족히 됩니다. 띠에 관심있는 분이면 한 번쯤 다녀가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소원도 빌고요.”
십이지신상이란 십이지신상은 ‘십이지생초’라고도 하며 중국 은나라 때부터 방위나 시간에 대응시켜 사용해 왔으며, 훨씬 후대에 들어 지금에 이르는 12가지 동물과 대응시켰다. 불교 영향이 지대한 십이지신상은 우리 역사에서도 통일신라 이후 능묘의 호석에서 십이지신상을 조각하게 됐다.
경주의 괘릉이나 김유신 묘가 최초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성덕왕릉에서는 환조로 세운 점이 특이하며 고려시대는 입상과 좌상이 나타나 있다. 주위로부터의 나쁜 기운이나 악귀를 물리치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십이지신상은 호석뿐만 아니라 무덤현실 내부에 벽화를 그린 것도 있는데 분묘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된다.
십이지신은 쥐로부터 시작해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