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깨 보니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지하노래방 피해 1억5천만원
지난 8월6일 폭우로 ‘다행중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 원성교 인근에서 4년간 지하노래방을 운영해 온 박재우(40)씨가 불운의 주인공.
그에게 있어 다행이라면 물이 가득 차오른 노래방을 정신없이 휘젓고 다녔는데도 전기누전의 위험에서 목숨을 건진 것. 그러나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노래방을 송두리째 잃었다.
‘1억5천만원’ 정도로 추정하는 피해액은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되었다.
“참 황당합니다. 손님이 빠져나간 새벽녘 노래방에서 잠자다 눈을 떠보니 빗물이 이미 배까지 차올랐더군요. 수압으로 현관문이 안열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팬티 바람으로 겨우 빠져나온 그는 당황한 속에 불현듯 ‘바지와 지갑’이 생각났다. “다시 헤엄치다시피 해서 들어갔죠. 1억5천여만원짜리 노래방에서 건진 것은 30여만원 들어있는 지갑 뿐입니다.”
4년 전, 호서대를 졸업한 인연으로 알게 된 천안. 마침 친구가 운영하던 노래방을 인수하게 된 그는 아내와 어린 아이 둘을 안산에 남겨둔 채 노래방에만 매달렸다. 친구가 얘기하던 장사수익은 딴판이었다. 주인이 바뀌니 손님도 끊기는 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하나 하나 내 고객으로 만들어야 했다.
“조금 지나자 생활비를 보내줄 정도의 수익이 됐죠. 크게 벌지도 못했지만 다들 두려워한 IMF의 찬바람도 비껴갈 수 있었죠. 그런데 느닷없는 폭우로 하루아침에 가진 것 없는 실업자가 돼 버렸습니다.”
대범한 그에게도 이번 상심은 무척 큰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 사업을 해왔고 외부요인들에 의해 연속된 사업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것은 정말 화납니다. 안 일어날 수 있었던 피해 아닙니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행정당국의 안이한 대응으로 원성천이 범람했다는 생각입니다.”
한달여동안 여관 등을 전전하며 노래방을 정리했다. 내부 인테리어나 기기, 냉장고, 자판기 등을 뜯어 버리는 데만도 수백만원이 들었다. 60평 노래방에 쏟아진 물을 소방차가 빼내는데 장시간 걸렸다.
“지금은 안산 16평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처제 식당에 잠깐씩 도왔던 안사람은 이제 발벗고 출근합니다. 나한테는 그동안 너무 일만 했으니 좀 쉬라고 위로하는데… 괜히 내 잘못도 아닌 물난리에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폐업 신고까지 낸 그에게 이제 천안에서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가해자’를 찾아내는 일 뿐이란다. “1억5천만원의, 내 삶의 전부를 앗아갔습니다. 만약 폭우만이 가해자라면 공손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겠지요. 하지만 폭우와 공범인 시행정까지 봐주기엔 너무 고통이 큽니다. 감정적으로 처리해선 안된다는 걸 압니다. 정확한 시비를 가려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곧 ‘정의’입니다.”
뜻을 함께 하는 원성동 1백50여 피해자와 함께 시행정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이틀 멀다하고 천안을 찾아온
다. 새 삶을 시작하기 전에 지난날의 생활을 명확히 정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