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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이 돼도 굴하지 않은 의병정신의 신화

‘11월의 독립운동가 노병대 선생’(盧炳大·1856.12.30~1913.7.10)

등록일 2013년11월0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11월의 독립운동가 노병대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노병대(盧炳大·1856.12.30~1913.7.10) 선생을 201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1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선생은 1856년 경북 상주군에서 태어났다. 성재 허 전(許 傳·1797~1886·조선후기 문신)의 문하에서 수학한 선생은 위정척사론에 입각해 무너져 가는 조선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선생은 서울로 올라가 고종황제로부터 밀조(임금이 비밀리 내린 조서)를 받아 의병 거사를 계획했으나 여의치 않자 이강년의병부대에 참여해 좌종사로 활동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서울시위대 및 청주진위대의 군사를 규합해 속리산에서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선생은 김운로를 맹주로 추대한 후 충북 보은·청주, 경북 상주, 경남 안의·거창, 전북 무주 등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했다.
1908년 일경에 의해 붙잡힌 후 고문으로 한 눈을 잃은 선생은 폭도내란죄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경술국치 특사로 풀려났으나 “너희의 경사인데 왜 나를 석방하느냐”며 항거하다가 강제로 출옥됐다.

출옥 후에도 선생은 의병 재기를 위해 1911년 풍기, 1912년 안동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913년 3월12일 다시 붙잡히게 됐고, 1913년 6월5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옥중에서도 독립을 향한 투지를 꺾지 않고 단식으로 항거하다 28일만인 1913년 7월 10일에 순국했다.

1968년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리/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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