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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쪽방에서 그리는, '세상 떠난 아들, 연락없는 남편'

희망2013-심복순(67·가명·대흥동)

등록일 2013년10월2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희망2013-심복순(67·가명·대흥동)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난지 벌써 14년이 됐네유. 내 뱃속으로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식인지라 지금도 종종 생각나고 애틋해지쥬. 명절이나 생일이 다가오면 더 그래유. 요즘 몸도 더 안 좋아지는데 날씨까지 쌀쌀해져 다가올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정말 한 걱정이유.”

천안시 대흥동 천안역 앞 교차로.
한때 천안 최고의 번화가 였던 이곳은 성장판이 닫혀 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제 활력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 근처는 각종 계획과 소문만 무성할 뿐, 정체된 모습으로 조금씩 메말라 가고 있다.
올해 67세인 심복순씨가 살고 있는 혼자 살고 있는 쪽방은 이 역전 앞 교차로에서 1분도 안 걸리는 초역세권이다. 하지만 그녀가 기거하는 쪽방 골목의 풍경은 70년대 이전의 모습그대로다.

‘청소년출입제한구역’이라는 안내판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촌이 속살을 드러낸다. 입구에는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는 이 동네 반장님의 20여 마리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 소란이 인다.
오래된 건물에 지붕까지 낮다보니 대낮인데도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몸을 움츠리고 옆으로 어깨를 빼야 들어갈 수 있는 낡은 나무문을 열자 반질반질한 때가 묻어 있는 널빤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한 덩치 하는 기자가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올라가보니 2평이나 될까하는 조그만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심복순씨가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생활하는 쪽방이다.
낡고 더러운 이불이 깔린 방안에는 TV와 작은 서랍장, 각종 박스들로 몸을 들일 공간조차 보이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고 할 수 없이 인근의 한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심씨의 사연을 듣기로 했다.

남매를 남기고 떠난 남자

천안 문화동이 고향이라는 심복순씨는 말 그대로 천안 토박이다.
형제는 여동생이 하나 있지만 17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각자의 삶을 산 지 오래다. 어리고 배운 것도 없다보니 식당 설거지를 비롯해 각종 잡일들을 해야만 했다. 어두웠던 10대, 20대의 일들은 그녀의 기억에서 뭉텅 잘라져 있는 부분이다.

심씨는 37살 때,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정을 맺고 혼인신고를 한 이 남자는 4살짜리 아들과 6살짜리 딸을 그녀에게 맡기고 떠났다.
딱히 한 달 이라도 같이 살을 붙이고 산 것도 아니고 부부의 정을 쌓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인연이 그녀에게는 소중하기만 했다. 부모형제와 헤어져 오랜 기간 외롭게 살아왔던 그녀에게 아이들은 부담이 아니라 의지가 됐고 삶의 이유이자 동력이 되어 준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살다가 안서동 쪽방촌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애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어유. 1년에 몇 번 들르는 애들 아빠는 10원 한 장 도와준 적이 없어유. 생활은 늘 찢어지게 가난했쥬. 그래선지 딸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나가서 지금껏 연락 한 번이 없어유. 그나마 아들하고는 정이 좀 있었는디…” 심씨는 말끝을 흐린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그녀의 아들은 14년 전, 32살 때 신변을 비관하며 음독자살했다고 한다. 막노동이라도 하고 나면 용돈도 가끔 주고, 먹을거리라도 사오고 했던 그 아들은 그녀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친아들이나 마찬가지다.

“불쌍해서 그래유. 어떻게 모질게 그래유?”

심씨는 이미 10년 전 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을 주는 협심증 때문에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때부터 매번 먹어야 하는 약이 있는데 최근에는 돈이 떨어져 그 약조차 먹지 못한지 4개월이 다 됐다. 허리디스크도 문제다. 작년에 수술을 받긴 했지만 외풍이 심한 집에서 웅크리고 겨울을 나서인지 영 시원치가 않다.
지금 그녀가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돈은 노령연금과 수급비 6만원이 전부다.

혼인신고가 되어있다보니 현재 63세인 서류상의 남편 앞으로 60만원의 추정소득이 계상되고 그런 이유로 지원받는 수급비는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시청 복지사는 남편에게 연락해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떼던지, 이혼을 하던지 하라고 조언하지만 심씨는 끝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다.

“불쌍해서 그래유. 그 사람이나 나나 죽으면 묻어줄 사람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겄어유. 내 혼자 맘대로 어떻게 모질게 호적을 고친데유.”
현재 심씨는 복지사를 통해 LH매입임대 사업에 신청한 상태. 11월이 되면 이사를 갈 수 있을지 아닐지 그 결과가 나온다. 지금도 역전 한 쪽방 2층에서 날마다 더 차가와지는 공기를 느끼고 있는 심씨. 그녀에게도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날이 곧 찾아올까.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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