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피해 현장을 방문한 장 총리서리 뒤로 노발대발 울분을 토하는 서정희씨에게 몇몇 공무원이 진정을 시키고 있다.
“당신들 왜 나타나서 괴롭히는 거야. 뭐 하나 해준 것도 없으면서….”
11일(일) 천안 원성천 수해현장을 방문한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가 한 주민가족으로부터 ‘듣기 싫은’ 말을 들었다. 갑자기 뛰쳐나온 주민이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며 현장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 삿대질을 한 것. 그곳에는 장 총리서리를 비롯해 심대평 충남도지사, 성무용 천안시장 등 30여명이 수해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공무원 몇이 겨우 진정시키려 했으나 이번엔 자식들이 나와서 한바탕 난리를 쳤다.
피해현장을 둘러보고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하고자 한 장 총리에겐 내심 마음 한구석이 찝찔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들 가족의 큰아들, 이찬우(34)씨가 털어놓는 사정을 듣고 보면 복받치는 감정이 폭발할 만도 하다.
“지난번엔 불난리를 겪더니 이번엔 물난리가 뭡니까. 안 겪을 수도 있는 걸 두 번이나 겪는다고요. 약주고 병주는 것도 아니고…울화통이 치밉니다.”
서정희(64)씨는 큰 아들이 5살 되던 해 남편을 잃었다. 이후 원성천 하천부지에 집을 얻어 억척스럽게 5남매를 키웠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며 나름대로 일상의 작은 행복을 느낄 무렵,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80년대 초, ‘송유관 사건’ 하면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당시 원성천을 타고 엄청난 양의 기름이 누출된 데다 불까지 붙어 원성천변 일부 주민들이 불 속에서 뒹굴었다. 이때 서씨와 둘째 아들도 얼굴 등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천안에는 40여년만에 내린 폭우로 지역 곳곳이 물바다로 변했다. 매년 장마를 맞지만 피해규모가 작았던 천안이 이번에는 주저앉았다. 침수피해지역은 대부분 하천변. 시내권에서는 유일하게 원성천이 범람했고, 서씨 가족은 불난리에 이어 이번에는 허리까지 덮친 집을 버려두고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天災)라면 덜 억울하겠습니다. 그러나 원성천이 범람한 데는 관계기관이 한 몫 거들은 것 아닙니까. 상수도 공사한다고 하천을 파헤쳐 놓고, 각종 장비가 산적돼 있는가 하면 부유물질들이 다리를 막은 것이 범람의 주 원인이라고 봅니다.”
장 총리서리 차량이 떠난 후 이찬우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서씨가 실신지경으로 쓰러진 것. 이들 가족과 몇몇 주민들의 근심 속에 서씨는 자가용에 태워져 병원으로 떠나갔다.
만신창이 집과 쓰러진 어머니, 체감하는 복구지원 대책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이찬우씨는 망연자실, “어머니에게 조그만 불상사라도 나면 정말 가만 안있겠다”며 소리 한번 지르는 게 고작. 이찬우씨는 또한번 분노했다. 하천공사를 위해 도로변으로 나가는 길 한가운데서 전날 저녁부터 막고있는 소형 포크레인 때문에 어머니를 태운 차가 뒤로 후진해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까지 이씨는 답답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