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말할 것 없이 지방의회가 본령이다. 지방의회는 ‘자치’의 시작이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집행부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이 밑바탕에 있어야 한다. ‘지방의회’가 본분을 잃을 때, 지방자치는 실패한다. 그만큼 지방의회가 차지하는 본질적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방의회의 역할론과 맞물려 정당공천제가 낳는 부작용을 들어 공천제 폐지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작년 대선 때 양당 후보와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했다.
다음 달로 다가온 4·24재보선을 앞두고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도마에 올랐다. 정당공천제는 애초 도입 취지와 달리 ‘돈 공천’,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화 등 역기능이 많아 폐지 여론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19일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이번 재보선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 또, 민주당에도 무공천할 것을 제안하고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부 반대 의견에 부딪혀 1차 제동이 걸리긴 했으나 새누리당이 처음으로 지방선거 무공천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며, 환영하는 바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는 1995년부터,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2006년부터 도입됐다.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 등이 그 취지다. 그러나 이 같은 장점보단 지방자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 사례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중앙당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초단체장·기초의원 후보에 대한 공천권을 행사해 지방자치 취지를 훼손하거나 돈 공천 등 폐단도 많았다. 지방의회가 중앙정치권의 예속된 사고로 휘둘리고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는 행태들이 존재하고 있다.
기초의원들은 당선 뒤에도 다음 공천을 위해 공천권을 쥔 지역구 의원의 선거운동원 역할을 해야 하는 등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 근간을 위협함은 물론 정치불신의 요인이 되어 왔다는 지적을 국회의원들과 중앙 정치권만 모르쇠로 방관하고 있다. 제 밥그릇 챙기기란 비난의 목소리에도 귀 닫는 행보를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공직자 선거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지난해 9월 새누리당 정몽준·이재오 의원이 기초단체장 및 기초·광역의원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국회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는 아직 상정 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여야는 정치쇄신 의지를 천명하고 대선공약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조속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해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후보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 위한 논의에 양당과 정치권은 적극 동참해주길 촉구한다.
4월25일 경기도 가평군수와 경남 함양군수, 기초의원은 서울 서대문 마, 경기 고양시 마, 경남 양산시 다 등에서 기초단체장 선거가 치러진다. 기초단체장 후보자는 그동안 공천을 받기 위해 주민보다는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또 당에서는 후보의 자질보다는 충성도를 공천의 잣대로 삼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지방자치가 중앙 정치에 예속되고 지역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해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의 연속이다. 칼자루를 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내놓고 싶진 않을 것이다. 지구당의 의사 결정과 지방의회 후보 공천이 국회의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책임 정치는 어불성설이다.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는 지방의회를 통해 책임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주장에 국민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중앙정치의 논리와 줄 세우기가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정당 구조하에서 정당공천 폐지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여야는 이번 재보선이 정당공천제 폐지 실현 무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를 살리고, 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