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때묻지 않은 가장 순수한 사랑을 간직한 부모님의 해맑은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풍경 속으로연분홍 복사꽃이 만개한 지난 4월 어느 날, 풍경화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이 포착됐다. 산골 아낙은 앞서가며 두엄과 비료를 뿌렸고, 뒤따르던 농부는 소가 끄는 쟁기로 흙을 뒤엎고 있었다. 산골마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러 간 기자는 풍경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북면에 사는 이대식(63)·김원례(64) 부부는 언제나 둘만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사랑의 결실로 다섯 남매가 태어났다. 다섯 남매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두 부부가 만든 가족공동체에는 애틋한 사랑이 흘러 넘치고 있다. 운명적 만남아버지(이대식씨)는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대부분 청각장애인들은 언어습득이 쉽지 않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가엾은 아버지는 지난 63년을 고요와 침묵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세상과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아버지만의 세상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언어장애인들이 주고받는 정식 수화는 아니지만 가족끼리의 의사소통은 손동작만으로도 가능하며, 어릴 때 어깨너머로 배운 서툰 한글도 요긴하게 사용한다.아버지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은 농사짓는 일이다. 어쩌면 땅을 일궈 곡식을 키우는 일이 몸은 고되지만 아버지에게 가장 즐거운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지금도 새벽부터 밤늦도록 땅에서 자라는 곡식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김원례씨)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다. 외할머니께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어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곱 살 되던 해 고열을 몹시 앓았다. 의료사정이 좋지 않던 당시상황에서 어머니는 청각을 잃었고, 아버지와 똑같이 침묵의 세계에 갖혀 버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렷하지는 않지만 일곱 살 때까지 배운 언어로 기초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서로 불운한 처지의 두 사람은 안성으로 시집간 고모할머니(할아버지의 동생)의 주선으로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아픈 곳을 쓰다듬으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품팔아 소 빌려쓰던 아버지부모님은 모두 교육의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다. 한때 이웃의 멸시와 조롱도 있었지만 이들의 앞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넷째 은희씨 기억에는 집에 소가 없어서 아버지가 이웃집 일을 해 준 대가로 소를 빌려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또한 자식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워보겠다는 아버지의 노력이 가슴 시릴 정도로 아프게 기억되고 있다.“부모님은 잠자는 몇 시간을 빼면 모든 시간을 논과 밭에서 일하면서 보냈어요. 남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오남매를 키우려니 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죠.” 아버지는 요즘도 5시면 일어나 집 안팎을 정리하고 들에 나간다고 한다. 아버지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기계를 두려워한다. 그 흔한 경운기조차 다루지 못해 아직까지 소와 지게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6000평에 이르는 논과 밭일을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지금까지 거뜬히 해내고 있다. 요즘도 들일을 나갈 때 아버지 어깨엔 지게가, 어머니 머리엔 큰 광주리가 따라 다닌다. “할머니!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말을 못하나요?”첫째 은용(40), 둘째 기환(38), 셋째 주환(35), 넷째 은희(32), 막내 성환(29) 이들 오남매의 성장기는 순탄치 못했다. 청각과 언어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할머니!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맨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나요?” 첫째 은용씨가 네 살 무렵 날이 저물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마을 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울먹이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당시 그 어린아이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둘째 기환씨도 역시 어릴적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반항이 심했다고 한다.“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통해 본능적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환경이라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불행은 본인에게 돌아가는 것이죠. 두 분은 그러한 이치를 행동으로 보여주셨어요.”특히 주환씨는 다른 형제들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누구보다 부모님을 이해하려 했고, 어린 나이에도 집안 일을 거들며 부모님을 챙겼다고 한다. 지금도 주말이면 가장 먼저 부모님께 달려가 농사일을 돕는다. 부모님이 가장 자랑하는 막내 성환씨는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 유학중이다. 건축을 전공한 성환씨는 전역 후 건축업계에서 일하다 뜻한바 있어 유학을 택했다. 지금 부모님이 살고있는 2층집도 부모님 이용하기 편하도록 성환씨가 직접 설계해 지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위대한 유산“부모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았어요. 분에 넘치는 사랑만을 주셨죠. 그것도 모르고 오히려 가끔 남들과 다르게 가엾은 부모님께 심통을 부리곤 했죠.”“지금 우리 오남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있어요. 훌륭한 언어로 가르침을 주시거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신 것은 없지만 몸소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직도 배울 것도 많고요.”오는 14일(일) 장남 기환씨가 결혼식을 올린다. 모처럼 흩어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첫째 은용씨와 셋째 주환씨에 비해 서른 여덟 살에 올리는 기환씨 결혼식이 많이 늦었다. 그동안 장남의 결혼식이 늦어져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물질이 아닌 사랑과 이해로 가족애를 키워 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정의 달을 더욱 푸근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