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가영이가 병든 할머니를 지키며 극진히 간호하고 있다. 왼쪽 뒷모습을 보이는 학생이 가영이.
“마안하다 가영아!” 병든 할머니 긴 한숨만 “미안하다 가영아! 어린 널 고생만 시켜서…”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가 어린 외손녀의 손을 잡고 힘겹게 꺼낸 한마디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친 쇳소리로 잦아들고 있었다. 산소공급용 튜브로 목이 뚫린 채 던진 할머니의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할 그저 거칠게 숨쉬는 소리로만 들린다. 그 말을 알아들은 가영이도 한 마디 한다. “그래도 할머니가 곁에 있어서 좋아요.”순천향병원 입원실에서 교복차림으로 중간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가영이를 만났다. 친구들은 학원이니 과외니 하며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가영이는 할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틈틈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가영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을 시작한 것은 갓난아기 때부터다. 엄마의 이혼과 새 출발이 할머니와 가영이를 숙명처럼 매듭지어놨다. 가영이의 어릴적 기억은 항상 어딘가 아픈 할머니의 모습이 전부다. 언제부터인지 정확치는 않지만 할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지금은 만성신부전증으로 매일 혈액투석을 해야 한다. 그 이전부터 할머니는 고혈압과 당뇨합병증을 앓아왔다. 그리고 눈은 두 번씩이나 수술했는데도 낫지 않고 지금은 실명상태에 이르렀다. 할머니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 할머니 곁을 열 다섯 살의 어린 가영이가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가영이는 한 밤중에도 몇 차례씩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한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자주 졸린다. 수업중에 아무리 눈을 치켜 뜨고 정신을 차리려 해도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한단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런 가영이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잠이 많은 아이 정도로만 알뿐. 올해는 할머니가 몇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그 곁에는 가영이가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가 입원하기 전까지 보금자리였던 다섯 평 남짓 월세 단 칸 방에는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외)삼촌이 홀로 지키고 있다. 어른인 삼촌조차도 오히려 가영이가 돌봐줘야 할 대상이다. 가영이의 하루는 병원에서 시작해서 병원에서 끝난다. 할머니 옆 간이침상에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할머니 아침 챙겨드리고, 학교로 간다. 학교를 마치면 집에서 밥을 챙겨 가지고 나와서 할머니에게로 간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영이의 중학교 생활도 저물어 간다. 요즘 친구들은 고교 진학을 위한 고민이 한창이다. 보통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가영이도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영이는 고교진학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저는 천안여상에 진학하고 싶어요. 그리고 졸업하는 대로 사회에 나와서 돈버는 일을 하고 싶구요. 그렇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 걸요. 이럴 때 제일 속상해요.”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자로 매달 20∼30만원의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세와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면 그야말로 빠듯한 삶이다. 어린 가영이의 삶의 무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가영이 담임교사에 따르면 가영이는 학교생활에서 어두운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항상 밝고 적극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나 가족들도 가영이 칭찬에 입이 마른다. 요즘 저런 아이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이 안락한 잠자리에서 꿈꾸는 이 시간, 가영이는 할머니 배설물을 걷어내고 속옷을 갈아 입혀드리고 있다. 가영이의 어린 속에서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이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