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기천문 이성욱 원장이 기천수련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이성욱·35·천안기천문 원장반만년 민족역사와 함께 한 전통무예, 일상 속 심신수련으로 삶의 정화를“싸움터에서 수천의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용자 중의 으뜸이라.”“말이나 글에 집착하지 말고 몸으로만 수행하라.”기천문을 세상에 알린 기천인들의 큰 스승, 초대 기천문주 대양진인의 말이다. 세상에 나오기 전 기천은 조선시대 무인탄압정책과 일제시대 무인말살정책에 이어 해방 이후에도 왜곡된 전통문화관에 의해 속세를 피해 철저히 산 속에서 전수돼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기천은 산중비전으로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힘겹게 맥이 이어졌다. 또한 기천의 공부는 이해가 아닌 체험이며 그 체험을 통해 느낌과 느낌으로 전해줄 수 있는 가르침인 까닭에 그 흔적이 몸짓과 마음에 남아 지금에 전해지는 것이다. 대양진인의 뒤를 이어 2대 박사규씨가 문주직을 계승받았다. 박사규 문주는 현재 계룡산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박사규 문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이성욱(35) 원장은 최근 천안에서 활동하며 기천의 심오한 세계를 전수하고 있다.이 원장은 중?고등학교까지 태권도를 수련했다고 한다. 이후엔 해동검도에 심취해 공인 4단까지 올라 도장을 운영해 왔다. 그러다 해동검도의 원류가 기천임을 알고 기천수련에 매진하고 있다.이 원장은 “민족정기가 어린 기천수련으로 심신의 탁한 기운을 몰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천문에 대해 종교단체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음식점으로 오해해 주문전화가 걸려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겪었다고.기천문의 기원은 국조인 단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산중비전으로 내려오다 원혜상인-대양진인-중용선인(현 문주)의 계보를 잇고 있다. 기천이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낼 당시는 절정의 전통무예, 민족선도 기천, 산중비전 기천, 기천활명, 단학기천, 기천 춤사위, 지킴이 기천 등으로 다양하게 전수됐다. 일반적으로 득도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얻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기천문에서는 철저히 몸으로 수행하라고 가르친다. 일반인들의 통념을 깨고 몸으로 얻어지는 득도의 원리를 체험적 가치개념으로 정립한 것이 기천문이다. 이성욱 원장은 “기천인들 사이에 전해지는 구전설화에서는 무학의 절대지존으로 알려진 달마가 기천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백두산에서 구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구려 연개소문도 기천의 수련을 받고 중국대륙 본토까지 기개를 떨칠 수 있었다”며 “기천은 민족선도의 큰 맥을 정법으로 이어온 성명쌍수의 심신 수련법이며, 수 천년 역사 속에 내재해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문의:☎564-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