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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 만에 평가받은 독립유공

독립유공

등록일 2005년08월0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목천초등학교에 건립된 목천 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 기념비. 목천 학생독립만세운동 주역 이규태 선생 포상기미년(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천안지역에서 가장 먼저 거사했던 목천학생만세운동을 주동했던 중심인물이 광복 60년 만에 공적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게 됐다.이는 천안만세운동기념사업회 김성열(65) 본부장, 임명순(57) 연구부장이 상해임시정부 자료집 등을 끈질기게 추적해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본보 2004년 12월14일 보도)당시 천안지역만세운동을 전체적으로 조종한 천안읍교회 안창호 목사는 병천교회 진명학교와 수신 장명교회 학교의 교사 김구웅 선생을 목천, 병천지역 배후 지도자로 지명했다.천안지역에서 가장 감시가 소홀했던 목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처음 거사를 하게 된다. 당시 시대상으로는 민족성향이 강한 사회단체는 모두 해체되고 학교는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교회는 자유스러운 편이었다.김성열 본부장에 따르면 김구웅 선생 지도를 받은 병천 김소용(16)학생과 수신 이규태(19) 학생은 학생들에게 생전 처음보는 태극기를 그려 거사를 준비시켰다. 또한 거사당일인 3월14일, 1백79명의 전교생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눈치를 채지 못한 일인교사와 지역유지들은 거사에 당황한 일제순사들과 같이 시위학생들을 해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이규태, 김소용 학생은 계속되는 심문조사에서도 배후 조종자를 발설하지 않았다. 배후 조종자인 지도교사 김구웅 선생은 4월1일 병천장터만세 거사에 참여했다가 순국한 것으로도 그 정황이 그려진다.이후 이규태(목천초 4회 졸업) 학생은 상해임시정부에 가담하고 김소용(목천초 5회 졸업) 학생은 일제의 감시 속에 농사일을 하며 교회에서 봉사했다.천안만세운동기념사업회는 이규태 선생의 아우인 이상욱 선생과 김소용 선생의 손자 김기동씨를 찾아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서했으나 이규태 선생만 수훈하게 됐다. 한편 천안만세운동기념사업회는 천안지역독립유공자 공훈 추서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천안읍내장터만세운동 유공자 인시봉 선생, 최오득 선생, 허병 선생 등에 애족장을 수훈한데 이어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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