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소설을 쓰는 임나라 작가와 구수영 시인이 제3회 천안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천안문학관(관장 이정우)이 제정한 천안문학상은 제1회 박미라(시인), 제2회 김용순(수필가) 작가가 받았다. 천안문학상은 추천과 공모기간을 두는 응모방식이 아닌, 지역문인들이 한해 발표한 작품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살피고 찾아 선정하는 방식으로 올해부터는 2명씩 선정한다.
이번 천안문학상은 안도현 시인(단국대 문창과 교수), 서정학 시인(두원공대 교수), 김홍정 소설가(충남작가회의 회장)가 심사를 맡았다.
임나라 작가는 ‘서울신문’과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충남문협과 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화집 『하늘마을의 사랑』, 『밥 태우는 엄마』 등 8권의 작품집을 펴낸 중견작가이다.
임나라 작가의 작품 미니픽션 ‘그 연인’에 대해서는 <군더더기 서술을 모두 제거했음에도 짧게 절제된 대화를 통해 오래 묵은 사랑의 감동과 크리스마스의 훈훈한 서정이 충실하게 전달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구수영 시인은 <시와편견>으로 등단한 후 시사모와 천안문협 회원, 시와편견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나무는 하느님이다』, 『흙의 연대기』를 펴냈고, ‘다독다독’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
구 시인의 시 ‘토분에 바람이 들어’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난해하지 않은 언어를 자신의 안쪽으로 끌어당겨 자신만의 시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하고 있다. 토분이라는 사물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사유를 진행시키는 동시에 화자인 나를 성찰하는 과정을 담았기에 흔쾌히 지지를 보낸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2022년부터 천안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해 오고 있는 이정우 관장은 “지역문학을 이끌어갈 역량있는 문학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문학다움을 향한 진정한 성과와 보람을 향해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12월7일 오후 3시 천안문학관 강당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에게는 상패와 상금 300만원이 각각 수여되며, 『천안문학』79호에 수상 특집으로 조명된다.
<미니픽션/ 임나라>
그 연인
산 중턱까지 올라가, 곡괭이로 삽주 뿌리를 캐 갖고 내려올 때였다.
-한 번 올라오세요.
명이의 문자다.
-지금 올라갈게.
남자는 집으로 와 주섬주섬 옷을 꺼내 바꿔 입고 길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서울 잠시 다녀올 테니, 삽주 뿌리 다려 잘 마시고 있어요.”
“여비는 있어요? 카드도 연체가 돼서….”
남자의 아내가 말을 더듬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요, 여비 남으면 팥빵 두어 개 사다 줄 수 있어요? 도시가 그립네요.”
발걸음을 떼놓던 남자가 순간 돌부처가 된 듯 멈춰 섰다.
‘누구 땜에 이 산속에 들어와 사는데?’
남자는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다시 걸으며 말을 남겼다.
“위암 환자가 무슨 밀가루 빵을…?”
멀어져 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남자의 아내가 느릿느릿 길게 말했다.
“여비가 좀 남으면 코발트빛 나는 머풀러도 하나 사다 줄 수 있어요? 머풀러를 휘날리며 맘껏 걷던 그 도시가 그리워서요.”
남자는 멀어서 못 들은 양 대답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명이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크고 넓은 동네 마당에 온 동네 친구들이 모여 자치기를 하고, 줄넘기를 하고, 바둑치기 놀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놀았다. 노을이 지고 어둑어둑 땅거미 질 때까지 남아 있는 건 언제나 남자와 명이였던 듯했다. 마당 가운데에 가로지른 도랑을 두고 이쪽은 남자의 마당이었고, 저쪽은 명이네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하던 검정 고무줄을 걷어 뭉쳐서 명이에게 건네주던 일은 늘 남자의 몫이었다. 둘이에게 세월의 변화는 생전에 없을 듯했다.
하지만 본래 몸이 허약한 명이를 두고 성년이 될 무렵 남자는 길을 떠났다.
안개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성급함이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 돌아볼 겨를을 주지 않았다. 남자에게 명이는 그저 구름 속에 가리웠다 언뜻언뜻 잠시 비쳐 보이곤 곧 구름 너머로 사라지는 신기루였을 뿐이었다. 남자가 아내의 사기빚으로 하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무렵 명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남자는 마른 장작개비 같은 다리로 서둘러 승강기 계단을 밟았다.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통로를 걷는 남자의 발걸음은 익숙해 보였다. 명이를 만나러 갈 때면 늘 가는 길이었다.
명이는 식당에 먼저 와 있었다.
“뭐 드실래?”
“늘 먹던 대로 돈까스로 하지 뭐.”
명이는 돈까스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내가 그렇게 빨리 보고 싶었어요? 문자 보자마자 달려오게?”
명이가 놀리듯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남자도 덩달아 빙긋이 웃었다.
남자는 돈까스 먹으러 서울에 온 듯 열심히 먹었고, 명이는 예나 이제나 건성 먹는 듯했다. 만나자마자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어쩌면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앉아 서로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 해가 짧으니, 일찍 출발해야죠?”
커피숍에서 차를 마신 후, 명이가 서둘러 일어섰다.
버스 매표소에서 표를 산 명이는 하얀 봉투와 함께 남자의 윗저고리 포켓에 찔러 넣어주었다. 남자는 이제 사양하는 몸짓도 하지 않았다.
“건강하게 잘 살아.”
“어른들이, 멩이는 멩이 길다 말했잖아요? 용케 살아남았다고.”
“이제 올라오지 않을 거야.”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명이도 마주 손을 내밀다가 이내 거두곤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 주곤 등 돌아섰다. 마른 꽃과 마른 나무가 된 듯했다.
남자는 망연히 서서, 걸음을 떼어놓는 명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포켓에서 봉투를 꺼냈다. 두툼했다. 낯이 홧홧했다. 남자의 가슴에 처연함과 안도의 숨이 세게 몰아쳤다.
명이는 헤어질 때면 꼭 하얀 봉투를 내밀며 그때그때마다 이유를 대곤 했다.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도리를 선물했잖아요? 그 값이에요. 후후.”
“나 처음 만난 날 말했잖아요? 보고 싶었다.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어. 그 생각값이에요. 후후.”
‘올해도 당신 치료할 약초 종자랑 묘목도 좀 장만할 수 있을 거 같네.’
남자는 화장실 문을 나섰다. 맞은 편에서 창밖을 향한 채 통화를 하는 명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 통장 인출 내역을 보았어요? … 치유할 사람에게 필요한 듯해서요. … 왜냐구요? 나보다 가엾어 보여서요.”
남자는 허둥허둥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머리통이 하얗게 비어 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남자도 전화를 받았다.
“곧 출발해. … 알았어요. 당신이 부탁한 팥빵이랑 머풀러를 사서 갖고 갈 거요. … 아, 천사가 주었어….”
에스컬레이터 정면에 마주한 대형 거울 안에는 명이가 남자의 바로 위 계단에 서 있었다. 남자는 꽈악 눈을 감았다.
백화점의 넓은 홀 안에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크게 외치는 젊은 신부의 목소리도 들렸다.
“왜 성탄을 축하한다고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셨나요? 그건 미움도 원망도 없는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토분에 바람이 들어
구수영
토분 옆에 앉았네 오래전 불속에서 나온 흙은
아직 고향을 기억하고 있어 노을 번지는
하늘 보면 가슴이 뛰네 주책없이
나이가 몇인데 다시 붉어지고 싶은가
몸뚱이 어디에 딴 씨앗이라도 품고 있었나
헤프게 입꼬리 실룩이는 방방한
뒤태에 잠시 속을 뻔도 했다 가을은
날마다 우직하게 깊어지고
시작선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는 다음
계절이 보이는군
이어 달리기의 끝은 없어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뿐 숨을 마시고 뱉어내는 일이
결국
나이테를 더해가는 일인 것을
이제 곧 밤이 제일 긴 날이 올거야
헤픈 입꼬리 한껏 치장하고 어디로 내 달음칠 건지
이 해가 저물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흙덩이가 아닌
아직 츱츱하게 뛰는 심장 쓰다듬으며
당신을 응원하기로 했네
사랑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뛰는 가슴마다
과녁이 되어 날아드는 화살을 품으면 다시
봄이 될까
쓸쓸하지만 제 속으로 난 새끼도 잊어버린
당신 옆에 앉았네 바람이 제법 들어 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