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살의 어르신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러 갔다. 작년, 마을행사에서 뵈었을 때는 꼿꼿하게 서 계셨는데, 살이 뼛속으로 모두 숨어 들어간 듯 쇠잔하게 누워 계셨다. 겨우 숨을 몰아쉴 때마다 힘들게 가슴을 들어 올리신다. 그래도 정신은 맑아서 ㅏ네이션을 보고 활짝 웃으신다. 오래 두고 보고 싶다고 벽에 붙여 놓으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신다. 마당에는 할머니가 가꾸셨을 영산홍이 저 혼자 지천으로 붉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일찍 돌아가셨고, 손자며느리는 얼니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에 비관한 손자마저 아이들이 어릴 때 자살했다고 하니 팔십이 넘어서 증손자들을 맡아서 키워주신 것이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를 동네사람들이 착하고 성실하다고 칭찬하는 걸 보니, 증손자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숨을 몰아쉬며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할머니가 아직도 그들에게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여기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안쓰럽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에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어른이 있다면 어이는 어떠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카우아이섬’의 연구조사가 떠올랐다. 1950년대 이 섬의 주민들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주민 대다수가 범죄자나 알콜중독자였다고 한다. 이 섬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이라고 생각한 연구자들은 무엇이 이 섬사람들을 이렇게 피폐하게 했는지에 대해 연구하다가 고위험군이었던 201명의 아이 가운데 72명은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훌륭하게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이 아이들을 사회부적응자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버리고, ‘무엇이 역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주느냐?’로 질문을 바꾸었다. 잘 자라준 72명의 아이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까이에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도 있지만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많은 아이를 보아왔다. 오프라 윈프리가 어머니와 함께 살 때 인생의 밑바닥에서 좌절했다가 어머니를 떠나 친아버지와 양어머니를 만나면서 그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세계적인 여성으로 성장했었듯, 사람은 결국 사랑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내어줄 수 있는 이가 곁에 있으면 척박한 상황에서도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이론인가.
오랫동안 그룹홈 아이들을 보며, 그들의 성장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고 하면서도 늘 부끄러웠다. 나는 어떤 아이에게 꼭 필요한 단 하나의 언덕이 되어 준 적이 있을까? 그저 행사에서 그들을 볼 때나 그룹홈을 방문해서 아이들을 만날 때에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그룹홈에 있을 때보다 사회에 나가면서 더 많은 좌절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하와이 카우아이섬의 종단연구에서 발견한 단 한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새겨본다.
몇 명의 보호종료 청년을 상담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두 팔 벌려 그들을 끌어안았다. 잘 잤어? 밥은 먹었니?라고 문자 보내면서 마음을 내어준다. 그들이 어렵고 외롭다고 느낄 때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들 주변에서 오래도록 바라볼 것이다. 언제라도 기대고 싶을 때 어깨를 내어주는 할머니로 살 것이라고 결심한다. 취업을 알선해주는 것보다 ‘네가 옳았어’라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먼저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들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서 지역사회에서 자리잡기를 바라는 기도를 날마다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