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라고는 해도 칠월 말의 해는 아직 쉬이 떠나지 못한다. 천안 월봉산을 물들이고도 남아 우리동네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서울로, 김포로, 강화로 돌아 집에 왔을 때였다. 베란다 앞 벚나무의 직박구리 둥지를 들여다보니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어린 새 한 마리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 놈은 금세 나뭇가지로 포로롱 날아와 앉았고 어디서 날아왔는지 어미새 한 마리도 날아와 한참동안 찌지골 찌지골 지저귀었다. 

“아줌마, 고마웠어요. 참 고마웠어요. 우리를 귀찮게 하지 않고 가만가만 바라봐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아기새 세 마리가 무사히 부화해서 무럭무럭 자랐어요. 날갯짓 연습도 해서 이제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요. 아 참, 그때는 놀랐어요. 아줌마가 저희 둥지 가까이 셀카봉을 들이밀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나중에 플래시가 번쩍 하기에 우릴 찍는 줄 알았다니까요. 우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볼 걸,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가들이 배고프다고 입을 쫙쫙 벌려서 좀 폼이 안 나긴 했지요?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요. 아무튼 아줌니, 정말 고마웠어요. 안녕히 계세요. 또 놀러 올게요.”

새들의 지저귐이 돌림 노래로 들렸다. 아니, 랩송으로 들렸다. 엄마새와 아기새는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흔들 바람결에 춤을 추듯 그렇게 한참을 지저귀며 이쪽 가지에서 저쪽 가지로 한 발짝씩 옮겨 앉으면서 스텝을 밟듯이, 무대에서 솜씨를 보이듯이, 그렇게 고별공연을 하고선 홀연히 날아갔다. 
‘다른 애들은 기다리는 척 하다가 먼저 날아갔어요. 성미도 급하지요? 인사도 하지 않고 갈 수는 없단 생각에 나는 둥지에서 하루종일 아줌마를 기다렸어요. 제가 인사하고 떠날 수 있어서 기뻐요. 찌지골찌지골~ 찌지골찌지골~ ’
새들은 떠났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봄 벚꽃은 한꺼번에 와르르 피었다가 흰나비처럼 한바탕 군무를 추고는 하르르 져버렸다. 꽃 진 자리에 연초록으로 올라온 이파리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감싸안을 때였다. 앞 베란다 바로 앞에 새들이 부산스레 드나들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보니 둥지를 틀고 있었다. 둥지를 틀기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금세 튼튼하게 완성하고는 알록달록한 알 세 개를 낳았다. 어미새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나뭇가지가 꺾어질 듯 곤두박질치며 흔들리는데도 어미 새는 꼼짝하지 않고 알을 품었다. 여름소나기마냥 쏟아지다가 아예 폭우로 변한 날도 있었다. 

아파트 유리창으로 보는 나는 애가 탔다. 우산을 씌워주고 싶고 둥지를 아예 베란다 안쪽으로 들여놓고 싶었다. 어미새가 알을 품은 지 14일이 되던 날 마침내 빨간 몸으로 세 마리가 태어났다. 백 퍼센트 성공이다.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르다’더니 엄지손가락만 하던 것이 하루가 다르게 털이 나고 새의 꼴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다투어 입을 벌리고 받아먹더니 제 어미의 모습으로 제법 자라고 있었다. 

그때는 그 애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알을 낳았을 때, 새끼가 부화되었을 때 셀카봉을 들이밀어 사진을 찍었을 때도 이름 모르는 새였다. 아파트 앞 정원 나뭇가지에서 자주 보고 목소리가 크고 몸집도 그리 작지 않은 회색빛 새 정도로 알았었다. 떠나가는 날에 나뭇가지에서 오래 머물며 작별의 콘서트를 하던 날 사진을 여러 컷 찍을 수 있었는데 새 박사, 나무박사, 식물박사이신 형부가 그 애들이 ‘직박구리’라 하셨다. 검색해 보니 직박구리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애들의 목소리도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누가 ‘새대가리’라고 새들을 낮추어 말했던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약육강식의 처절한 자연환경에서도 알을 품고, 부화시키고, 먹이를 입에 물고 와 새끼들에게 고루 먹이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켜서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게 이끄는, 그 지난한 과정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과 마주하게 된다. 월봉산 산책로에서 새들을 만나면 모두 내가 본 직박구리 같아서 더 정이 간다. 그들의 숲 속 콘서트를 들으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숲 향기가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