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숙(55) 시인이 ‘손끝 체온이 그리운 날’이라는 첫 시집을 냈다.
『문학사랑』으로 등단해 ‘시인의 향기(공저)’를 내고 한국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동면에서 태어나 병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천안토박이다.
윤 시인은 시골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1남6녀의 막내로 자랐다.
소녀적 감성으로 살다가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새댁이 되어버린 그녀.
또래 친구도 없던 낯선 환경에서 가끔씩 빌려볼 수 있는 ‘책들’과 아버지가 사주신 ‘작은 카메라’는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돼주었다.
막연히 동경만 하던 문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나이 40을 훌쩍 넘긴 후였다.
‘나도 잘 쓸 수 있는데….’ 시쓰기에 의욕은 앞섰지만 막상 쓰려 하면 생각만큼 쉽게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은 건 ‘시는 가슴으로 쓰는 것’임을 잘 아는 까닭이다.
휴대폰 문자 하나를 주고받더라도 ‘다르게 쓰고 싶다’는 욕심과 그간의 책읽기, 농촌생활에서 맛보는 풍부한 경험들이 그를 시인으로 성큼성큼 성장시켰다.
가슴아린 사연들, 시로 풀어내
시에는 그녀의 삶이 맛깔스럽게 녹아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불똥이 가슴으로 튀어」 들었다.
살아간다는 건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것 아닐까. 아무리 살아봐도 별다른 답이 없다.
어릴 적 아버지가 오일장에서 꽃신을 사오셨다. 나에게도 꽃신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어머니는 한번 신어보지도 못하게 하고선 검정고무신으로 바꿔오셨다. 「그날 저녁 찰고무신보다 질긴 울음」을 울었다.
아버지는 나이 50에 늦둥이를 보시고, 그런 막내딸은 자라면서 남들 부모보다 훨씬 더 늙으신 당신들이 창피했더란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따스한 춘삼월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이후로 봄이 오는 것이 그녀에게는 못내 서럽기만 하다.
산천이 떠나가라
흙바닥 동동거리며
우는 여식을 외면한 채
춘삼월에 먼 길 떠나신 아버지
이젠 산소 길이 소풍 길 되어
봄이 오는 것이 서럽습니다
(중간생략)
막내딸은 소풍날이 서럽습니다
이제야 고백하건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한치 위안이 된 건 나에게도 더 이상 늙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밥만 잘 들어가더라는…, 인간의 속내는 그런 것일까.
이렇듯 윤혜숙 작가의 시는 온통 슬픔의 시다.
시를 쓰게 된 지난 4년 여, 가장 먼저 토해내고 싶었던 게 마음속의 ‘한’이었나 보다. 그래도 이제는 나이도 있고,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젊은 혈기로 마구 뱉어낼 일이 있겠는가.
삭히고 묵힌 묵은지처럼, 또는 삭정이처럼 그러해야지. 「겨울나무」는 그런 그녀의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꾹꾹 눌러 밟은 자국마다
아픔이 뭉쳐질까 되돌아보지
않으렵니다.
그의 시 '천생연분'은 남편에 대해 쓴 글로, 그녀의 시세계를 잘 표현해 낸 수작이다.
지적이고 슬림한 남자를 탐했건만 팔자는 그녀를 조롱한 것인가보다. 우락부락한 남편을 만나 거친 농촌생활로 살아온 생.
시를 쓴다며 괜히 남편 흉이나 볼까 하였더니 시라는 게 결국 자아비판이 되고 만다.
맹물에 된장 풀어
앙칼진 성질머리를 뚝뚝 잘라넣고
부글부글 끓여 밥상에 올리니
눈치라고는 봉선화 꽃물
끄트머리만큼도 남지 않은 남자가
얼큰하고 시원하단다
뚝배기에서
여자의 밴댕이 소갈머리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천생연분'에서 보듯 그녀의 시에는 모호함이 없다. 분명하게 할 말이 있고, 제대로 전달한다.
왈가닥처럼 살아온 그에게 알토란 같은 삶의 이야깃거린 가을낙엽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희노애락이다.
동면과 병천을 고향삼아 말뚝에 매어있는 소처럼 크게 벗어난 적 없는 농촌의 삶.
질경이처럼 아픔과 고난을 겪어내며 이젠 웬만한 풍상에도 끄덕없는 장년의 인간소나무가 되어버렸다.
“욕심이랄 게 없어요. 부딪치고 깨지고, 그래서 갖게 된 경험들, 추억들…, 그것들을 뱉아낼 출구(시)가 있다는 게 기뻐요. 시를 쓴다는 자체가 고통이지만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써야지요.”